나는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는 걸 왜 벌써 알아버린 걸까.
사실 삶을 살아내는 건, 기나긴 장미밭을 걷는 것이 아닐까.
무수한 꽃길만 걸을 수도, 그렇다고 끝없는 가시밭길만 걷는 것도 아닌,
그런 것이 삶이 아닐까.
그런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꽃밭인 줄도 모르고 꽃의 가시만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통 속에서 한 걸음을 떼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의 시각과 후각적 자극에 미쳐버려
가시밭인 줄도 모르고 두 걸음째를 걷게 되지 않을까.
실재하는 것과 인식한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한 번은 누군가가 잘 다듬어 놓은 장미의 정원에서 편히 걷다가도,
때로는 야생의 장미가 지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걷기도 하는 것.
삶은 그렇게 가시밭길과 꽃길로 양분되지 않으며 사실은 그 경계조차도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삶을 걸어내면서 꽃길임을 확신할 수 있는 때는,
계절상으로는 초여름, 장미가 만개한 것이 두 눈으로 보일 때 그 순간뿐이지 않을까.
그 이외에는 내가 가는 길이, 지나온 길이 온통 가시밭길이라고 인식하겠지만
결국 그 실체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꽃이 만개할 계절에 이르러서야
진짜 가시만 있는 가시밭길이었는지, 피지 않은 (지고 난) 장미꽃길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봄, 결과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시험에 떨어졌음을 확신했던 때.
눈 앞의 고통에 눈멀어 있을 때.
너무나도 지금이 가시밭길인 것 같을 때.
그 당시의 나는 이런 마음이 드는 나를 온 힘을 다해 위로해야 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했다.
그때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장미밭에서 개처럼 구르고 있을 뿐이라고.
결국 이게 꽃밭이었는지 아니면 가시밭길이었는지는 지금 판단할 게 아니라고.
다시 궤도에 나를 올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알았기에
스스로에게 판단을 유보할 것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