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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로우 Jul 19. 2022

첫수업

     첫 수업종이 힘차게 울리고 드디어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업 전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 도착한 순서대로 임시 자리를 정해주셨다.  내가 앉은 창가 자리는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작고 아담한 소 운동장이 보이는 쾌적한 위치였다. 난 운이 좋게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를 볼 수 있어 기분이 붕 떠오르는 듯했다. 


   첫 수업은 담임선생님의 전담 과목인 국어시간이었다.

"  월요일 첫 시간이 우리 반이어서 너무 좋다. 급하게 조회만 하고 나가면 여러 가지  인할 수 없어서 부족한 느낌이 들 텐데 말이야." 선생님은  반 전체 아이들을  둘러보며 출석부를 열었다. 그러고 나서 한 사람 씩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눈을 보았다.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해서 이름을 빨리 외우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지금 둘러보니까 여학생들은 벌써 치마도 고쳐 입었고 얼굴에 화장도 하고 왔네. 남학생들은 실내화 안 신은 학생도 있고 넥타이도 안 매고 있는 학생도 있고.....

우리 학교는  '학생 생활 평점제'를 시행하고 있어.

일과 중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 (1점) 학생용 아닌 신사화 숙녀화 착용 (1점) 현란한 색상의 성인용 가방(1점)

 학교 지정 양말 또는 흰 양말 미착용 (1점) 두발 염색 (1점)

립스틱 또는 테이프로 쌍꺼풀 만드는 행위 (1점) 그 외에도 후드티 착용 금지와 단색 외투만 착용해야 하는 것이 벌점 항목이다. 각각 벌점 1점에 해당하는 누적 점수에 따라 교내봉사, 관찰 대상자로 분류, 학부모 서약서,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벌점을 받은 사람은 생활 기록부에 그 사실이 기재되어 불 이익을 받을 거야"  


   선생님이 출석부의 이름을 호명할 때 학생 한 명 한 명의 벌점 항목을 본 것이라는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닌 듯 아이들은 한꺼번에 야유를 보냈다. ' 우 ~ 에~ '

' 그런 게 어딨어요? ' ' 집에 후드티 밖에 없는데 ~' ' 색깔 있는 외투만 있으면 단색 외투 사야 하나요? '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때 여간 똑똑해 보이지 않는 여학생이 말했다. ' 체벌 대신에 벌점을 통해 학생들을 계도하자는 것 같은데 그 항목들 모두 인권침 해이 해당되는 것 아닙니까?'

그 아이의 까랑까랑 한 목소리도 특이했지만 고등학생이 흔히 쓰는 말투가 아니어서 모두 조용해졌다. 중학교 때 토론대회에서 상을 휩쓸었을 거라고 순간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상외의 단호한 질문에 분명 당황했을 선생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아이들은 선생님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은 함박을 한 입에 넣은 듯이 크게 벌려져 있었고 너무나 크게 웃고 있었다.

' 하하하하하하 ~ 우리 반 대단한 아이들로 모였구나? 이렇게 자기주장들이 강하다니 많이 멋지다! 

마지막  말한 학생이 아라지? 4번 이 아라? "

선생님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다른 어른들과 다른 반응이었다.

"너희들 혹시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라고 아니? 나중에 문과 학생으로 세계사나 윤리과목에서 루소를 배우게 될 거야. 루소가 썼던 책에 ' 사회 계약설'이라는 것이 나와. 사회 계약설은  쉽게 얘기하면 한 사회의 개개인들이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약속을 한 상태에서 산다는 주장이야.

나도 루소처럼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인정해. 그래서 우리 반만큼은 ' 생활 평점제'에 대한  특별한 '계약'을 해보자고 제안하려는 중이었어. 근데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의 주장을 그렇게 똑 부러지게 하다니 너무나 멋지구나 ~ "라고 하시더니 문득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셨는지 한숨을 쉬었다.


"휴~ 난 너희 나이 때 그러지를 못했는데.. 이유도 모르고 어른들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살았고 안된다면 싫어도 꾹 참았거든.. 그래서 내가 공부를 못했나 봐. 내주장을 펴질 못해서.. 정확히 정정하자면 내가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하고 싶더라고.. 아무튼 너희처럼 똑 부러지는 학생들과 1년을 함께 보낸다니 기대된다. 애들아 ~ " 하시며 다시 만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 특별한 계약이라뇨? " 아까 반박했던 아라가 다시 나섰다.


  "그래, 그럼 내 생각을 말할게. 난 선생님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의무가 있어. 너희를 가르치고 계도하는 것 외에 학칙을 따라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학생들의 벌점 항목을 찾아 내야만 해. 벌점을 받은 학생은  부모님 서약을 받아오던 사회봉사를 하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불이익을 불사하고 벌점 받는 행동을 숨어서라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서로를 피하고 속이는 시스템으로  순환되는 거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막거나 권리를 침해하고 싶지 않단다. 너희가 학교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야 우리들의 관계가 선순환이 될 테니까. 나의 의무를 다하고 너희의 자유를 지키는 일을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 얘기해볼게. 생활 평점제에 벌점을 받는 학생에 그 벌점을 상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지.  상쇄가 뭔지는 아니? 상쇄는 상반되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어 효과가 없어지는 일이야. 한마디로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 방법은 우리가 의견을 나누어보고 정하기로 하자. 어때? 다수결로 정하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


  나는 오늘 벌점 항목에 해당 사항이 없는 몸가짐에 앞으로 염색을 하거나 화려한 겉옷을 입을 일이 없어서 생활 평점제 자체에 다른 감정은 안 생겼었다. 하지만 어쩌다 교복 넥타이를  잊고 등교했다가 억울하게 벌점을 받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슬며시 손을 들었다. 앞쪽 창가 자리에 앉아있어서 몇 명의 아이들이 거수했는지 볼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과반수가 찬성한 것이 틀림없었다.


" 내가 먼저 선생님 의견을 낼께. 월요일 1교시가 내 수업인 국어시간이야. 그래서 생각해 낸 건데.. 벌점을 받은 사람은 그 벌점을 없애기 위해서 월요일만 등교를 1시간 일찍 하는 거야. 물론 나도 1시간 일찍 올 생각이야. 일찍 교실에 와서 나와 함께 책을 읽을 거야.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국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너희가 책 읽을 시간이 너무 없어서 말이야. 책을 읽고 벌점을 상쇄하는 거지.. 물론 읽은 책에 대한 것을 다섯 줄 정도 써서 내기도 해야 해.   다른 사람 의견 있으면 말해봐라 "


" 저는 집이 멀어서 1시간 일찍 나오는 게 어려워요"

"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어쩌죠? 등교시간도 겨우 지키는데요."  " 책 읽는 것 싫어요" " 수학 문제 풀면 안 되나요?"


벌점을 없애는 것 자체는 구미 당기는 의견이었지만 아침 등교를 일찍 하는 데에는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아침 시간 말고 점심시간에 식사 후에 30분은 안 되나요? "

" 교실 청소는 어때요?"  " 집에서 책 읽고 독후감 써오면 안 되나요? "

선생님은 여러 생각을 들어보시려는지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멈출 때까지 조용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니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얼마 전 세계 국제기구인 OECD에서 세계 각국의  실질 문맹률을 발표했어. 실질 문맹률이란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글이 의미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거기에서 우리나라는 실질 문맹률 세계 3위란다. 올림픽 메달 획득 3위도 아니고 한국인이 한글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치욕스럽게 나타낸 순위이지. 너희들의 언어 능력은 어떤 것 같니? 여러 과목의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니?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과서 언어 수준'을 너희들의 ' 언어능력'으로 따라가냐는 뜻이야.

언어능력이 떨어지는데 학습 성취도는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희박하고... 학습능력과 성취도를 높이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뿐이란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 아침 조회 전 1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을 학교 생활 평점제에 대한 벌점을 상쇄하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꼬리를 물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는 못했다.


" 별 다른 의견 없으면 규칙을 정하자.

 1. 학교 생활 규칙을 준수한다.

 2. 규칙 위반 시 벌점을 받아 생활 기록부에 기록으로 남긴다.

 3. 규칙 위반 시 벌점은 월요일 독서시간을 통해 상쇄한다.

위의 세 가지 대안 중에 선택은 너희들이 하는 걸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하자. "


선생님의 말씀에 꼬리를 물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는 못했다.그 후로 우리는  한 학기 동안의 수행평가와 집필 평가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모두 기가 죽게 되었다. 학교 생활 기록부안에 교과 발달상황이 교과 이수 충실도와 교과 성취도 우수성의 요소로 기록된다는 말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난 정말 고등학생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던걸까? 괜스레 머리가 욱신거려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하늘도

내 몸을 옥죄는 이야기들을 함께 들었는지 흐린 구름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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