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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Aug 08. 2021

낯선 도른자들에게 정드는 '캐릭터 쇼'의 묘미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리뷰


히어로 영화의 팬으로서, 옆 동네 마블 댁과 비교했을 때 매번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작품을 기대하는 건 참 고된 일이다. 히어로 영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다크 나이트> 3부작이나, <조커>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만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정도가 DCEU의 체면을 제대로 살렸다.


그럼에도 지난 8월 4일에 개봉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시 한번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영화였고,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DCEU 치고는' 꽤 괜찮은 영화다. 똘끼 충만하기로 유명한 감독의 지휘 아래 재탄생한 도른자들의 이야기, '역시는 역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본 콘텐츠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포스터



히어로 영화에서 B급 감성과 R등급이 만나면?


본 영화의 감독은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건' 감독이다. 이미 제임스 건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메가폰을 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특유의 B급 감성을 기대한 사람이 많았을 텐데, 확실히 기대 이상의 똘끼를 보여준다. 


조금씩 나사가 빠진 듯한 캐릭터, 적재적소에 재생되는 올드팝, 쫀쫀한 이야기 전개 방식, 특유의 찰진 대사까지 '아, 역시 제임스 건인가' 싶을 정도로 감독의 장점이 잘 녹아들었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제임스 건의 작업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니, 이 영화는 진짜 하고 싶은 대로 즐겁게 만든 게 느껴질 정도다.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컷


여기에 R등급이라는 '표현의 자유'를 얻은 제임스 건은 마치 봉인 해제라도 하듯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을 완성했다. 히어로 영화를 통틀어 R등급을 받은 최초의 작품은 2009년 <왓치맨>이고, DCEU 영화 중에서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최초다.


다만, 피칠갑으로 가득한 고어한 장면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건 단점으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캐릭터의 개성을 부여하고, 긴장감을 줄 수 있는 표현 방식이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피로감을 주기도 했다. B급과 R등급의 만남을 통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지만, 고어한 표현은 조금 덜어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낯설었던 캐릭터를 정들게 만드는 마법


히어로 영화는 '캐릭터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히어로와 빌런을 막론하고, 각 캐릭터가 가진 서사와 매력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러한 캐릭터성을 위트 있는 방식으로 잘 표현해냈다. 특정 캐릭터의 사연을 단순한 플래시백으로만 때우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다양하게 표현하고자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워낙 유명한 '할리퀸'을 제외하고는, DC 코믹스의 팬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비주얼에서부터 거부감이 드는 캐릭터도 있을 거다. 하지만, 워낙 캐릭터 설계를 영리하고, 재밌게 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낯설었던 캐릭터가 어느새 정감 가는 캐릭터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보다 보니 깜찍할 정도로, 어떤 작품에서든 다시 보게 된다면, 반갑게 느껴질 듯하다.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컷


이야기 전개의 중심을 잡아준 '블러드스포트', 여전히 매력적인 '할리 퀸', 슬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폴카도트맨'과 '랫캐처 II'도 모두 좋았지만, 필자는 특히 '피스메이커'와 '킹 샤크' 캐릭터를 인상 깊게 봤다. 두 캐릭터 모두 '겉보기와 다른' 반전 매력을 지녔다. 우스꽝스러운 헬멧을 쓴 근육 바보인 줄 알았던 피스메이커에게서는 냉정하고 잔혹한 모습을, 무서운 깡패 상어인 줄 알았던 킹 샤크에게서는 의외의 깜찍한 모습을 발견했다. 


참고로 피스메이커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피스메이커>가 HBO 맥스를 통해 공개된다고 한다. 각본과 연출, 제작 모두 제임스 건 감독이 맡는다. DCEU의 첫 드라마인 셈인데, 워너 브라더스도 그렇고, 제임스 건 감독도 그렇고, 피스메이커라는 캐릭터를 장기적으로 잘 활용할 계획으로 보인다.


엠파이어에서 공개한 드라마 <피스메이커> 스틸컷



'리런치'로 살려낸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제작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2016년에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후속작으로 생각했을 거다. 제목이 동일한 데다가 2016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할리퀸', '릭 플래그', '아만다 월러' 등 동일한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2021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후속작이자 리런치(relaunch) 영화다. '리런치'는 전편과 같은 세계관이자 속편은 맞지만, 스토리는 서로 연관성이 없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아예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는 '리부트(reboot)'와는 다른 개념이다. 2021년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과 '캡틴 부메랑'이 구면인 것도 전작과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리런치 작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2016년작인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컷


이처럼 관객들이 헷갈릴 수 있음에도 리런치를 진행한 것은,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혹평을 받았을지언정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독특한 설정과 '할리 퀸'을 비롯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일 거다. 


결과적으로는 DCEU 세계관에서 폐기될 뻔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제임스 건 감독의 리런치를 통해 다시 살려냈으니, 앞으로의 DCEU 영화에서도 더욱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가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본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후속작이라던지...)







영화 <샤잠!>, <버즈 오브 프레이>, <원더우먼 1984>까지 3 연속 실망으로 인해 더 이상 DCEU의 작품을 기대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데, 좋은 타이밍에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듯하다. 더불어 본 작품을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의 후속작인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기대감도 더욱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DCEU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마블을 의식해 무리하게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개별 작품을 발굴하는 것에 더 투자를 해주면 좋겠다. 다행히 DCEU에는 막대한 캐릭터 소스가 있으니까.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포스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The Suicide Squad, 2021)

감독: 제임스 건
출연: 마고 로비, 이드리스 엘바, 존 시나, 조엘 킨나만 등


[감상노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도서, 인터뷰,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이에 대한 감상을 기록합니다.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contents-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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