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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Dec 03. 2021

올콧을 위한 그레타 거윅의 오마주

그레타 거윅 영화 <작은 아씨들>

 어릴 적, 주말이면 할 일없이 만화만 보는 나를 다독여 아빠는 학창시절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곤 하셨다. 어느 한 날은, 영화 <빠삐용>에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소설을 토대로 만든 실화라 했다. 원작의 감동을 다 하지 못해도 아빠는 영화로 다시 <빠삐용>을 만나는 순간 심장이 터질듯한 자유를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소설에 비해서는 한 참 못하다 했다. 아빠는 많은 영화가 소설을 베이스로, 또 그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많이 만들어지지만, 실화에 비해 소설의 감동이 못한 것처럼 영화가 소설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영화는 소설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 하고,
절대로 영화가 되지 못하는 소설도 있지 성경과 삼국지처럼.


그래서 아빠는 뭐든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것을 읽어라고 항상 권면한다. 정말 읽기 싫은 책 먼저 읽고, 영화보다 난해한 소설을 먼저 읽고, 그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 음미해보라고. 또한 그 문장을 네가 좋아하는 것에 맞닿아 상상력을 펼쳐보라고. 그렇게 개인의 시선을 하나의 큰 미장센에 담아 표현을 하면 한 편의 영화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영화가 어떻게 소설과 다른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소설의 무엇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를 보려면 영화의 시작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유의 깊게 살펴보면 된다고 하셨다.



그레타 거윅의 2020 <작은 아씨들>

지난 2020년 세간을 뜨겁게 달군 영화 <작은 아씨들> 역시도, 영화만 7번째, 이번이 8번 째 제작된 19세기 스테디셀러이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 소설에서 시작되어, 수차례 영화와 방송으로 재해석되어 반영되어 왔지만, 2020년 ‘그레타 거윅’을 만나 완전히 새롭게 변신했다. 원작인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감독에게는 정말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2020 <작은 아씨들>은 영화의 전체적 내용과 작품성보다는, 2020년 <작은 아씨들>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그레타 거윅’이 <작은 아씨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에 중점을 두고 보게 된다.


2020년 영화 <작은 아씨들>은 편집장과 ‘조’가 단편소설을 출판하려고 저작권료를 협상하는 신으로 시작한다. 소설이 잘 팔리려면, 주인공이 결혼을 하거나 죽음으로 끝나야 한다는 편집장에 말에 조는 반대한다.  


시대가 변했다. 시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져야 해.


하지만 조는 글을 써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저작권의 퍼센티지를 높여 받기위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주인공을 프레데리크 교수와 결혼하는 것으로 엔딩을 마무리 짓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조는 진부한 이 엔딩을 썩 내키지 않아 한다. 그녀는 끝까지 주인공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글을 쓰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소설을 끝맺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2020년 영화<작은 아씨들>에서 거윅은 뛰어난 미모로 사교계를 사로잡는 ‘배우’가 되는 꿈을 접고 로리의 가정교사였던 ‘존 브룩’과 결혼하여 가난하지만 사랑을 선택하는 ‘메그’. 책 출판에 성공하며 작가로의 입지를 다져가는 ‘조’. 남은 가족들과 이웃에게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고 죽음을 맞이한 ‘베스’. 프랑스어와 그림을 공부하며 부유한 남성과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짝사랑 하던 로리와 결혼 하는 ‘에이미’ 를 통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자매들을 더 부각시킨다.   



여자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 결혼해도 남편 소유, 아이도 낳으면 남편 소유야!


19세기 여성들은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스스로 독립 할 수 없었다. 여성은 결혼을 통해 오직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로 삶만 허락되었고. 독신 여성이 되려면 직업여성이 되거나, 배우. 아니면 대고모 할머니처럼 돈이 많은 여자 여야만이 독신으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경제적으로 조금 더 부유한 남자를 만나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비단 예술가조차도 글과 그림을 위해서 경제적으로 서포트 해 줄 남자가 필요했고, 그들을 위한 시선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도 150년 전이나 많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직업과 돈이 있어야 하고, 여성으로써 사회에서 입지를 굳히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일정 시점이 지나 나이가 들어 직업과 돈에 입지를 마련하지 못한 여자들은 결혼을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일정한 수입과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가들 역시 결혼을 통해서 안정적인 생활과 예술적 활동의 공급을 해결하지만 동시에 주체로의 영혼을 잃는다.  


하지만 2020년 <작은 아씨들>의 조는 시대를 불문하고 반복되는 현실에 조는 더 주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당당하게 현실에 맞선다. 소설 <작은 아씨들>의 원작의 저자였던, ‘올콧’ 역시 실제로 소설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조’를 정말 결혼 시키고 싶지 않아했다 한다. 올콧 역시도 조를 학교를 운영하며 작가로써의 싱글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고 싶어 했다고. 제본된 책이 완성되어 나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책에는 '루이자 메이 올컷'이라는 이름이 찍혀있다. ‘그레타 거윅’은 ‘올콧’이 소설에 채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에 담아 ‘올콧을 위한 오마주’로 이 영화를 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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