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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13. 2020

나는 고급호텔의 접시 닦이였다

고급호텔 뷔페

세 달 쯤 되니, 나는 돈을 줘도 안 먹겠다 했던 그 곳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시각 아늑한 조명아래 하얀색 테이블보에 놓인 예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

쿰쿰한 냄새 나는 어두운 곳에서 접시를 닦고 있는 나와는 다른 세계 같았다.



10년 전 나는 고급호텔의 접시닦이였다.

대학 시절 참 다양한 알바를 했다. 성실한 자영업자로 한 평생을 사신 부모님 덕분에 늘 기본적인 생계를 걱정한 적은 없었지만 그 사실이 하고 싶은 플러스 알파들도 걱정없이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에서는 즐거움도 경험도 스펙도 돈이 필요했다. 과외와 학교도서관근로장학생은 4년 내내 달고 살았고 나머지 알바들은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서 몇 달씩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경험은 고급 호텔의 접시 닦이였다.

그때도 왜 돈이 필요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며칠 바짝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알바를 구했다. 그때 했던 고급호텔 접시 닦이는 다른 일에 비해 시급이 조금 높았다. 광역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고 식사와 교통비도 지급이 된다고 했다.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어둡고 차가운 공기를 뚫고 등장하는 광역버스에 몸을 실으면 주말에도 어김없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직장인들과 같은 처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잠깐 할 알바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견뎌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만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인데.

아무튼 벨트에 몸을 맡기고 졸며 깨며 가다보면 날이 밝았다. 주말 아침 조식을 찾을 사람들을 위해 그때 출근해야 했다.


pixabay @ Free-Photos



10년 전 이야기이니 그 사이 그 호텔에서도 많은 것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호텔마다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적어둔다.


그럼에도 그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이 글에 서술하는 이유는 이때의 경험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도 돈을 지불한 사람과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로 너무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절감하게 해 준 경험이자, 멸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거부할 것만 같았던 '위선적인 풍요'를 나도 모르게 동경해가는 나 자신의 인간성을 관찰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접시 닦이 첫날.


호텔에서는 유니폼은 지급됐지만 살색스타킹에 검은색 단화만 신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 주말만 할 계획이었다. 편한 단화를 따로 사기엔 돈이 아까워서 동기언니에게 검은색 애나멜 단화를 빌려서 신고 갔다. 애나멜이 너무 딱딱해서 발이 아팠지만 잠깐이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긴 머리카락은 묶어서 검은색 망으로 올려야 하고 앞 머리도 위생모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핀으로 올린 채 일을 하라고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앞머리까지 깐 내 얼굴은 참 낯설었다. 이때 같은 날 알바를 시작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 지금도 앨범에 있는데 참 어색한 웃음으로 남아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나와 새로온 알바생들은 주방으로 안내 됐다. 주방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TV에서 보던 유명 쉐프가 있는 새하얀 주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요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 그릇을 닦는 곳이어서 그랬을까? 대형 냉장고인지 식기세척기인지 알바가 끝날 때까지 정체를 알지 못한 거대한 회색 기계들이 벽을 따라 있었고 바닥에는 거품 물이 흘러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하얀색인데 회색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는 몸집 좋은 남자분이 벽을 둘러싼 거대 기계들 앞에 있었다. 고무장갑을 팔꿈치까지 올려 낀 그 분은 하나가 4인용 식탁만한 싱크대 세 개 앞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싱크대가 워낙 커서 그 큰 남자분도 손을 담그면 팔꿈치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였다.


거품을 걷어내면 회색이 되어있는 물이 가득 담긴 싱크대 세 개는 호텔 뷔페에서 나온 그릇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홀을 담당하는 직원이나 알바생이 엄청나게 큰 검은색 쟁반에 음식물이 남은 접시, 손님들이 먹은 후의 온갖 식기들을 담아 들어오면 큰 음식물은 쓰레기통에 쏟아붓고, 모두 첫 번째 싱크대에 들어갔다. 음식물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채로 첫 번째 싱크대로 직행해서, 첫 번째 싱크대에는 건더기가 된 음식물들이 떠다녔다.


거기서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휘적휘적 하며 큰 음식물들을 그릇에서 떼어내면 바로 옆 칸으로 옮겨졌다.  

옆 칸 싱크대는 그나마 조금 더 물이 맑은 편이고 건더기가 적었다. 본격 설거지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거품도 많았다.

거기서 설거지하는 분이 세제 묻은 수세미를 쓱쓱 문질러 옆 칸으로 보내면 옆 칸에서는 물에 두 세 번 담궜다 빼서 나에게 넘겼다. 마지막 물은 그래도 그릇이 보였다.

나는 뜨끈하게 데워진 접시를 받아 마른 면수건으로 열심히 닦아 옆에 쌓아두었다.

주말, 뷔페에 사람이 많으면 식기세척기 속도로는 못 따라가니 사람들이 자주 쓰고 자주 걷어오는 접시류와 커트러리들은 대부분 그렇게 직접 설거지를 해서 빛의 속도로 무제한 순환을 시켰던 것 같다.


처음 그 싱크대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이렇게 대충 씻은 걸로 그 비싼 돈을 주고 먹는가 하는 충격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나는 일단 돈을 벌러 왔으니 묵묵히 덜 닦인 접시의 음식물을 마른 면수건으로 박박 닦아냈다. 그릇에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 음식의 마무리는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상황파악을 하느라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다. 대강 물에 담궈 휘휘 저어 나온 접시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30분을 빼고는 한 자리에 서서 계속 접시만 닦아야 했다. 다들 서서 일하는데 혼자 앉아서 접시를 닦을 수도 없었다.


정말 너무 바빠서 홀에서 그릇을 걷어올 일손이 모자라면 좁은 주방 구석에서 접시를 닦던 나에게도 홀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다. 홀에 나가는 사람과 옷부터 달라서 아무때나 나갈 수도 없었고, 홀에 나갈 때는 배워야 할 매너와 방식이 있다고 했는데 그걸 모르니 선배 서버가 지시한 테이블로만 직행해서 조용히 그릇을 쓸어담아와야 했다. 쟁반이 너무 커서 내가 들고 다니기엔 정말 후덜덜했다. 내 발에 맞지 않는 애나멜 단화는 너무 딱딱했고, 계속 서있어서 발이 퉁퉁부어 아픈 걸 참으며 어색하게 걸었다. 항상 쟁반을 들고 들락날락 할 때마다 발 때문에 넘어지거나 그릇을 놓칠까봐 걱정했다. 발이 아파 신발을 살까 생각하다보면 이 호텔 뷔페 한 사람값이면 지하상가에서 두 켤레는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점심시간인 휴게시간은 딱 30분 주어졌다. 주방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점심 배식이 이루어지는 곳에 가서 줄줄이 앉아 밥을 마시듯 먹고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 까지가 30분이었다. 30분을 넘기면 시급을 깎겠다고 해서 매번 급히 가고, 마시듯 먹고, 그 와중에도 수다를 좀 떨고 급히 돌아와 자기 일을 했다.



pixabay @ congerdesign




어차피 어디서든 집 밖에서는 집과 같은 위생상태는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 번에 걸쳐 물을 바꿔가며 닦은 접시도 준수하다고 할 수도 있다. 또 진짜 깨끗하게 위생관리를 하는 고급 음식점이나 호텔 뷔페도 있겠지만 내가 일했던 그 곳은... 전에 조카 돌잔치가 있어서 가본 최고급 뷔페도 속은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먹은지 일년도 넘은 속이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런 위생상태인지 모르고 저들은 그 비싼 돈을 주고 와서 먹나'하는 생각 뿐이었다. 모르니까 고급이라고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고, 모른 채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듣기만 해도 후덜덜한 뷔페 가격은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가끔 홀에 나가서 사람들이 떠난 식탁을 치울 때면 온갖 뼈와 휴지와 먹다 남은 음식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걸 보고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고급이라는 식당에 와서 전혀 고급스럽지 않은 매너를 남기고 간 사람들도 우습게 느껴졌다.

같은 테이블 사람들이 모르게 뱉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프그릇에 가래침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커피잔에 무엇을 닦았는지 모를 휴지가 쑤셔져 있기도 했다.  


쉐프들이 만드는 음식의 식자재 재료의 질이나 위생상태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듯한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음식들이 테이블에서 해체된 모습은 허무하고도 잠시뿐인 영광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모든 이용객이 다 그러진 않았겠지만 호텔이나 손님이나 참 겉과 속이 다르다고도 느끼며 이 비싼 호텔 뷔페의 화려한 홀 자체가 위선의 풍요가 넘치는 곳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돈을 줘도 앞으로 이런 곳에서는 먹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위선의 방관자적 입장에서 열심히 접시를 닦고 받은 돈의 맛은 꽤 달았다.

이틀 바짝 일하면 십여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주 주말 알바로 끝날 줄 알았던 접시닦이 알바는 그 뒤로 몇 개월 이어졌다. 처음에는 주말 고정으로 했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 뒀는데 자꾸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주로 손이 많이 부족한 날 따로 매니저에게 연락이 오면 그 전날 급히 동원되는 때가 많았지만 조금 더 센 시급이 주는 달콤함은 지난 주의 힘듦을 잊어버리게 했다.


그렇게 날들이 쌓이고, 비닐 커튼 너머 화려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점점 은근히 그쪽을 동경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겨울 밤 한 가정에서 새어나오는 촛불을 부러워하며 잠든 장면처럼 말이다.

성냥팔이 소녀보다는 나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는데도 돈이 있는 사람과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너무나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현실이 와닿는 날들이었다.


그릇에 들러붙은 음식물 딱지를 떼어내는 손길은 점점 무심해지고 익숙해졌다.

일하는 손은 타성에 젖는데 가끔 나가보는 홀의 말끔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저런 식당에서 실컷 대접받으며 가족들과 먹고 떠들고 웃고 싶다.

나도 이런 데 한번도 못 와 본 부모님 모시고 와서 누려보고 싶다.

이런 위생상태라도 괜찮으니.



pixabay @ranjatm



얼마 전 비싼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 대학생에게 듣기로 그 곳의 주방상태도 10년 전 내가 겪은 호텔의 주방과 다를 게 없었다. 다시는 그 레스토랑에 가지 않겠다는 스물 한살의 다짐이 공감되면서도 씁쓸했다.


정말로 사람이 많고 이윤이 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다수에게 위생적이면서도 양질의 '진짜 고급'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들도 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무엇이 문제일까.

이 문제에는 여러 가지가 개입될 것이다. 업자의 양심, 이용자들의 무관심, 이윤과 윤리 사이의 갈등, 언론과 미디어에 퍼진 화려한 모습과 광고 등.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뉴스에서 'OO위생상태 불량' '비위행위 적발' 등을 떠들어 대도 내가 가는 곳은 아닐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일종의 복불복 심리이다.

그 호텔의 그 장면을 기억하면서도 다른 모 호텔의 뷔페가 좋다더라는 말을 듣고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 10년 후의 나는 '거기는 안 그러겠지'라고 생각하며 정말로 언젠간 갈 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희망고문이자 딱히 알고 싶지 않은 회피심리가 깔린 묵인이다.

돈을 줘도 안 먹겠다던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자신을 생각하는 내면에는 세상이 고급진 인생이라 보여주는 이미지에 갇혀버린 소시민의 허세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서비스와 음식, 자본주의의 굴레가 오늘도 도시 곳곳에서 잘 작동하는 원동력에는 사람들의 '묵인'이라는 엔진이 있다.

가격에 비하면 형편없는 위생상태를 알면서도 결국은 손님으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어린 접시 닦이가 그러했듯. 허세와 욕망 앞에 눈을 잠시 감아 예쁘고 맛있는 감각적 쾌락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본성은 도시에 사는 사람 내면에서 수시로 빛을 발한다.

묵인하지 않아도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말하지 않는다는 건 죄일까 아닐까. 알면서도 묵인하는 사람들 덕분에 도시의 자본주의는 오늘도 순환한다.  수백개의 그릇을 순식간에 헹궈냈던 싱크대 물처럼.




표지사진 pixabay @ Fotographi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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