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간밤에 깔아둔 매트에서 작게 움직이며 잠을 쫓아냈다. 매트에 누워 등을 대고, 발가락에 힘을 주어 꼼지락대다가 두 다리를 뻗고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는 게 다인데도 하루의 시작을 움직임으로 시작했다는 느낌이 만족스러웠다.
무엇이든 '하고있다'는 감각이 중요한 사람은 이렇게 자기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쉽게 불안해진다. 하고있지 않은 시간을 슬기롭게 견디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참 피곤할테니 안타깝다 생각했는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 되었다. 뭐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좋은거 아냐? 의욕적이라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도하는 느낌에만 중독되면 영영 '배우는 사람'으로만 남는다. 바꿔 말하자면 '초보자'를 지향하는 사람이 된다.
배우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초보에게만 허락되는 찬사와 칭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도만으로도 대단하고 값진 것이라는 주문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한 걸음 뗀 것만으로도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초보에서 중급자 과정으로 넘어가려면 치루어야 하는 인내도 모른척하고 싶다. 그렇게 많은 일을 초보인 상태로 중단해왔다. 처음의 대단함, 반짝거림 대신 인내와 반복이 필요한 구간에 진입하면 참아야 하는 건 많아지는데 "대단하다" "잘한다" "멋있다" 같은 칭찬은 줄어들고 어쩌다 좋은 말을 들어도 예전같은 기분은 나지 않고 시큰둥하다.
좋은 말, 좋은 감정도 계속되면 권태가 온다. 자극은 반드시 무뎌진다. 시작할 때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건조한 마음으로 고민에 빠진다. 이런 마음으로도 계속할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설까.
요즘엔 '다시, 시작'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를 속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더는 피아노 치는 게 재미없다는 사람에게 바이올린 강습을 권하기 전에 한번만 피아노를 배우는 환경이나 강습 내용을 바꿔보라고 권하는 것과 비슷하다. '피아노'라는 영역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피아노의 테두리 내에서 아직 해보지 않은 일, 처음 시도하는 방법을 찾는 방식이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나를 속이며 완전한 이별을 미루고 미루다보면 피아노를 5년, 10년...N년간 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피아노를 '소설', '글쓰기'로 바꾸어 본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글쓰기라는 영역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기. 초보자 같은 호기심을 유지하며 오래 쓰며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