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35시간의 위엄
나의 근로조건은 주당 35시간이다. 야근시간 5시간을 합치면 주당 40시간이 최대치이다.
35시간을 근무일 5일로 나누면 하루 7시간, 점심 시간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친다고 해도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할 수 있다. 이것이 9 to 5 인생.
우리나라는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이니 정상적이라면 9시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하다 간혹 하루이틀 야근을 하거나 7시나 8시 사이에 퇴근하면 52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 6시 칼퇴는 언감생심이고 7시에 나가는 것도 눈치 보이고 야근은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자주 있는 일이 아닌가.
주당 35시간을 하다보니 깨달을 바가 있다면 이렇게 일하려면 일이 굉장히 독립적이어야 하고 회의나 프로젝트 등은 미리미리 일정에 잡아놓아야 하는데, 이 마저도 급한 일들이 몰려오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마감이 정해져 있는데 협업이나 준비가 지지부진하면 짧은 시간에 몰아쳐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일이 몰아치다보니 팀장이나 임원들은 아랫사람이 하는 일에 일일히 감독하기가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일이 틀어지거나 사고가 나면 그러려니 하고 다음 평가에 불이익을 주거나 일을 줄여줘서 사고를 덜 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팀원들이 알아서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나만 잘났다고 내 일만 마치고 나가버리면 내가 급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기가 굉장히 어렵다. 어차피 일들이란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혼자 싸매고 마무리 할 수 있다지만 시간이 지나 거대한 프로젝트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공식적인 프로젝트 멤버들 외에 지나가는 고양이 손이라도 아쉬울만큼 해야할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니 조금 여유있는 팀원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국내에도 자율 근무시간제, 자율 좌석제 등을 적용하면서 어려가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회사들이 많은데, 협업과 일의 분배에 대한 고민은 비슷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근로시간이 짧아지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러 업무 필터들이 사라지고 방금 내가 끝낸 일이 오롯이 상사, 고객사, 협력사에게 동시에 전해지니 최대한 실수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입 훈련이나 매뉴얼 작성은 점차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머리 잘 돌아가고, 눈치가 좋아 주변 상황 잘 파악하고, 일머리가 있지 않는 이상 역량을 쌓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짧게 일하면 좋기는 하다. 그런데 짧고 굵게 사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