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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기자 Dec 27. 2018

아듀! 2018

순삭된 365일


한 해가 또 이렇게 가는구나, 올해 많은 일들이 터져 내년이면 또 언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연말이니 지금 아니면 이 순간의 감정을 남길 날이 또 올까 생각이 들어 글을 긁적이고 있다. 지난여름 스웨덴 홍보처와의 계약도 만료됐고 취업/졸업 준비에 올인하고 싶어서 그간 브런치를 포함한 모든 SNS 활동을 접었다. 설상가상으로 논문 직전 학기인 이번 학기는 욕이 나오게 빡셌다. 극악의 커리큘럼 때문에 3일에 걸쳐 치른 3600자 시험, 1만 자 소논문, 2000자 과제와 별도로 논문 프로포절 준비까지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괴이한 커리큘럼이 지난 12월 19일 자로 일단락되고 (공식 종강은 1월 중순이고 아직도 과제가 남았다) 잠시 현자타임을 가졌다가 어제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솔직히 12월 한 달은 글만 쓰고 시간이 순삭된 느낌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핀란드에서 날아오는 반가운 친구 V의 편지


1. 다행히 논문 proposal을 써내고 이번 학기 성적도 잘 나왔다. 나는 미리 지난 7월부터 논문 토픽을 일찍 잡고 Ystad에 현장 견학까지 다녀왔는데 우리 학과 최악의 조교수 M 때문에 토픽을 포기하는 일이 생겼다 (추후에 털어놓을 일이 있겠지만 Film tourism이라는 분 전문가가 학과 내 그 사람이 유일했던 게 화근이었다) 최악의 인물이라 학생들이 다 싫어하는 탓에 supervisor 지정을 받을 때 그 교수에게 assign이 안 되기 위해 토픽을 바꾼 것. 그렇게 토픽을 포기한 학생이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이나 되고 나도 고심 끝에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10월경 존경하는 한국인 교수님께 하소연 겸 고민을 털어놓으니 다른 토픽을 제안하셨고 심지어 펀딩 요청 중이란 말씀까지 하셨다. 펀딩이고 뭐고 난 이 교수님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오케이 했다. 졸지에 수퍼바이저와 토픽까지 하루 만에 확정 지었는데 그때가 10월 23일. 우리 학과 중 내가 제일 먼저 논문 토픽과 지도교수를 정했는데 프로포절 마감일이었던 지난 12월 18일(학교/학과마다 다릅니다)까지 시간이 부족해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서 간담이 서늘했다. 차일피일 미루고 일정을 연기한 학과 잘못인데 피해는 늘 학생들 몫이다. 난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렇게 11월부터 Literature Review를 시작했지만 남보다 빨리 시작한 게 무색하게 12월 한 달은 정말 x같은 커리큘럼 때문에 리포트와 필기시험만 준비하다 순삭 됐기에 학사일정이 마무리된 지금에서야 문헌탐구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Food for thought"


2. 전화위복으로 엎어졌던 논문 토픽을 재가공해 공모전에 보냈는데  좋게 장관상을 받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짜증나는 M이다.  여자의 태만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논문 주제를 포기해야 했나. 학생들이 참여해서  분야가 학문적으로 계발될 수도 있는데 도와주진 못할망정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 뭐가 다른지.



3.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출판 컨택이 이뤄져 하반기부터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편집자님은 일이 지연돼서 연신 미안해하시는데 그분께서 이 글을 보실리는 없겠지만, 부디, 제발 더 늦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ㅎㅎ 올초에도 바쁠 거란 예감은 있었지만 내년은 미친 듯이 바쁠 것 같은 예감에 차라리 출간이 연기되는 일이 있더라도 무리하게 일을 밀어붙이는 건 피하고 싶다)



4.  인턴십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턴 오퍼가 와서 내년부터 근무하게 됐다. '잘하면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있다'던데 글쎄요ㅎㅎ 미안하지만 신뢰가 안 가서 다른 곳도 계속 지원할 생각이다. 이 회사 출근 문제 때문에 스톡홀름 근처로 relocate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 중이었는데 이제 연말이라 회사들도 쉴 테고 내년 초까진 일 없을 거라고 믿고 어젯밤 침대에서 쉬고 있는데 원하던 다른 회사 일차 통과 메일이 왔다ㄷㄷ(제발.. 이젠 좀 쉬자) 올해는 마지막까지 일이 많이도 터진. 딱 잘라 솔직히 말해서 스웨덴은 (적어도 내가 일하려는 분야에선) "잡 시장으로서" 매력이 1도 없다. 그래서 10월부터 전략을 수정해서 지원하던 중이었는데 여기 회사나 직무가 다 맘에 들어 탐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역시 relocation 문제가 또 발생하고.. 다 좋다 쳐도 하나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계속 고민 중이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전혀 신경도 안 쓰던 데서 변수가 생기다니. 안착하려는 내가 더 떠돌려는 나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내년 초중순까지 생각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미 답은 정해진 것 같기도)



5. 10~11월엔 비교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즐겁게 공부했고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터졌다. 연말엔 현자모드에 돌입해 답지 않게 블랙 프라이데이에 쇼핑광인 중국인 친구와 백 3개, 나이키 코르테즈 신발, 애플 맥북 을 주문했다. 에코백이나 심하면 비닐봉다리를 갖고 다닐 만큼 그쪽에 관심이 없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이쁜 명품백들이 눈에 들어왔고, 질렀다. 맥북 Pro는 대학원 졸업 선물용으로 나 자신에게 선물하리라고 석사 지원 전부터 벼르던 거라 잔뜩 기대하고 있다. 4년 전 탈사회부 기념으로 구입했던 LG 그램 노트북이 과로사 일보 직전이라 워드나 결제용도로 쓰고, 새로 온 맥북 프로는 철저히 콘텐츠 제작용으로만 전용하고 엔드노트 따위(!)를 절 깔지 않을 요량으로 졸업 시점에 살까 생각도 하고 다. 이 나이 소비의 즐거움을 알게 될 줄이야.



그간은 대사관과의 계약 때문에 다른 분들과 스웨덴유학 홍보 글을 브런치에 연재했었는데 지금은 훨씬 잘 쓰시는 분들이 양질의 더 좋은 글들을 생산하고 계신 데다, 출판이란 개인적 목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브런치에 글쓰는 동기 유인이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언제 또 여기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쓰더라도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사적이고 인포멀한 글이 될 것 같다. SNS를 끊고 사는 것에 맛 들인 것도 있고 취업/졸업 준비로 시간도 빠듯해져 페북이나 카톡 확인조차도 힘이 든다 (인도네시아 친구가 늙은 증거라고 비웃었다..ㅎㅎ) 그래서 여기 현지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2주 뒤 답장을 보낸 적도 있었는데 한국 친구가 오해하더라ㅜㅜ



결과적으로 올해 성과가 풍성했고 100프로는 아니지만 발전적이고 즐거운 한 해였다. 11월  잭팟이 터질 때만 해도 올 연말은 샴페인이라도 터뜨리며 진짜 웃으며 보내야겠다고 잔뜩 들떴는데 막상 연말이 되니 (내일, 모레... 줄줄이 약속이 잡혀 있긴 하지만) 경건해지고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노력도 했지올핸 운이 정말 좋았고, 스웨덴에 와서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에 계신 인연들로부터도 너무도 큰 은혜를 입었다.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 가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 복이 올해는 특히 너무 좋았다. 이 분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잘 해냈을까?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일을 나보다 더 기뻐해 주고 격려해 주시가족들과 어르신들, 가끔 전화나 카톡/ SNS큰 힘이 되는 격려 메시지를 주시는 사랑하는 전 직장 선배님들과 고딩/대학 친구들, 먼 곳까지 먹거리와 책을 보내준 고마운 친구와 직장 후배, 출판 컨택을 결심하기까지 계속 격려해주고 실무적 어드바이스를 아끼지 않았던 감사한 대학 동기 P.GH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를 거야, 네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유학 준비 때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충실한 핀란드 친구 V, 항상 영감을 불어 넣어주시고 삶의 지표가 되어주시는 롤모델..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 교수님, 여기서 만난 모든 한국인들(정 많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한국인 유학생 분들과 스웨덴에 거주하시는 멋진 여성 동지들), 1년 6개월간 서로의 자극제가 되어 준 고맙고 정겨운 대학원 동기들, 팍팍한 삶의 청량제가 되어 준 응원군 SFI Jensen skolan 친구들, 내 일처럼 진로 고민을 들어주고 어드바이스를 아끼지 않았던 strategic communication 학과 친구 A과 M, 정 많고 존재만으로 든든한 사랑스러운 중국인 친구들, 여름내 하이킹 동무가 되어 스웨덴 산(?)과 들, 호수를 누비며 지친 일 년간 내 마음에 평온한 위안을 선사한 토끼 씨..


2019년 모두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축배를 건네길,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모든 일이 형통하길 간절히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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