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시대를 맞이한 지 처음으로 공항을 이용했는데 헬게이트가 따로 없었다. 2020년과 21년까지만 해도 공항이 텅텅 비었고 기내 가운데 좌석 3개를 독차지한 채 누워서 오갔는데 이번 여름은 보복 여행을 나온 인파들로 어딜 가나 붐볐다. 출국 데스크, 보안 심사대, 하다못해 편의점도 장사진을 이뤘고 기내는 만석이었다. 더군다나 러시아 전쟁 때문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올초부터 파업으로 연착이 잦다는 글들이 올라왔다)을 피하려고 선택했던 폴란드 항공(LoT)은 기본 2시간, 최장 4시간 연착되는 바람에 고생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LoT의 약자가 'Late or Tomorrow'라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돌던데 알았으면 이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LoT에 배상을 요구했더니 의외로 2주 뒤에 순순히 300유로를 주겠다고 답변이 왔다. 그런데 막상 1주 뒤 계좌에 꽂힌 건 400유로였다. 아무튼 4번의 연착에, 강풍으로 결항이 되질 않나, 이번 여행은 유독 고단했기 때문에 한 달 여름휴가를 끝내고 지금 벨기에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꿈 같이 느껴진다.
브뤼셀 공항 안내도는 최소 3개 언어(영어, 불어, 더치어)로 표기돼 있다. 이번주에 배운 etage가 눈에 띄었다. 6달 지나니 이제 제법 간단한 불어는 눈에 들어온다.
망중한을 즐겨야 할 여름휴가에도 <미니학습지> 프랑스어는 함께 했다. (참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휴가철인데도 자잘하게 사람 만나고 집안일하느라 공부가 잘 안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쉴 줄로만 알았는데 설거지하느라 주부습진에 걸려 돌아왔다. 밀린 공부라도 하려면 고양이 새끼가 나타나서 자꾸만 훼방을 놓았다.
투쟁의 흔적
... 잠시라도 집사를 가만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래서 광안리 앞바다 카페로 피신 가서 밀린 학습지를 해치웠다.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카페들이 즐비해서 유학 전에도 즐겨 찾았던 장소다. Liz 선생님이 '프랑스어는 꿀잼과 극악 단계를 왔다 갔다 하는 언어'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공감했다. 사실 3단계부터 바빠서 손도 안 가고 불어에 관심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불포자를 고려한 커리큘럼인지 4단계부터는 기존의 배운 것을 응용하는 내용이 주로 나와서 조금 나았던 것 같다. 휴가철이라 공부를 거의 못했는데 내용마저 어려웠더라면 진짜 포기했으리...
본가 서재 책장에서 못 보던 책 하나를 발견했다. <사전 없이 혼자서 배우는 최초보 프랑스어>라는 교재였는데 어머니 필체가 적혀 있는 걸 보니 생전에 보시던 책인 것 같았다. 예전에 불어를 공부하겠다고 하신 걸 얼핏 들은 적은 있는데 진짜로 하셨을 줄은 몰랐다. 설령 하셨다 해도 어머니도 불포자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금니 물고 이를 붙인 채" 이런 설명을 그림까지 곁들여 적어두신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책이 참 좋은 것 같아서 <미니학습지>와 같이 보려고 벨기에에 데려왔다. 어머니가 쓴 글 옆에 내가 쓴 글이 더해지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다. 슬쩍 뒷장을 봤는데 116p까진 필기를 열심히 하셨는데 반과거/미래 시제부터 깨끗하다. (역시 프랑스어 시제는ㅠㅠ 어머니 고생하셨습니다 이걸 혼자 하시느라)
<최초보 프랑스어> 학일출판사. 9쇄나 찍은 걸 봐도 그렇고 잘 만든 교재 같다.
문법이란 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규칙'이자 '약속'인데, 처음에는 프랑스어는 문법이란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불규칙과 예외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4단계부터 배운 시제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나중에는 이해하려는 마음을 접고 그냥 익숙해질 때까지 입으로 중얼거리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4단계부터는 '불규칙함 속에서의 나름의 규칙성'을 직관적으로 체득하기 시작한 듯하다. '음... 이 동사는 이 시제에선 이렇게 불규칙하게 변화하겠지?' 하고 겐또를 치면 신기하게도 맞다! 파리의 미로 같은 방사형 도로만큼이나 혼란스럽지만 그 나름대로는 정제되고 규칙적이고 논리를 갖춘 언어였던 것이다.
아버지표 한식 꾸러미.. 행여나 비행기에서 터질까 봐 완충제로 꼼꼼하게 포장해주신 걸 하나둘씩 풀면서 내가 받는 가족, 형제, 친지들의 사랑에 마음이 아려왔다
예전 프랑스에 사실 때 이모가 갖고 계시던 에펠탑 모형을 데려왔다 (얘는 결국 돌아올 운명이었던 거다). 벽이 허전해서 본가에서 내가 좋아하는 큐브릭 감독과 햅번, 그 외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 사진을 붙였는데 마치 내 집에 온 것처럼 아늑하고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물사진 위주의 자그마한 흑백사진이 더 걸릴 것 같다. 벽걸이 식물들도. 나중에 책이 많아지면 작은 책장을 마련해야 할 테고.. 장식용 찬장을 사서 그 안에는 가족들 사진으로만 장식하고 싶다. 거실 전체를 서재로 만드는 게 목표다
올여름 휴가는 너무 바빴지만 고단했던 만큼 너무 좋았다. 휴가 일수가 많았던 것도 있겠지만 마음 상태가 달랐던 것 같다. 2017년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갔을 때 명함과 아끼던 자가용이 없어진 것 이상으로 (스웨덴에 가기 전 중고차 달러에게 팔았다) '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고 그게 그리도 싫었다. 월급 받는 박사생이면 모를까 기레기 일하면서 번 피 같은 내 돈을 축내는 비루한 석사생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헬싱보리 기숙사 침대에 누운 채 내가 학생이라니, 내가 학생이라니.. 이렇게 중얼거리던, 현타 온 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나한테 학생은 불안정함을 상징하는 단어였고 그 상태 자체가 그냥 싫었다. 공부나 대학원 생활, 교우관계,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더없이 즐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별개로.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전엔 한국에 와도 늘 시간에 쫓겨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복귀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선지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일해야 할 돌발상황(?)이 발생하진 않을까 해서 회사 노트북이랑 업무 서류를 다 들고 왔는데 휴가일 내내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비로소 모든 걸 다 잊은 채 내 사람들, 가족들과 쉴 수 있었던 휴일이라 정말 좋았고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비단 정서적인 면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면에서도. 아직 완전한 안착은 아니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느낌이다. 벨기에에 도착했던 작년 첫해는 현지 생활과 직장 업무에 적응하는 나날의 연속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여유도 생기고 생활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져서 달갑다.
나는 크게 야망이 있는 게 아니고 주말과 퇴근 후 시간을 침범받지 않는 환경에서, 딱 정해진 시간 동안만 직장일을 하고 퇴근한 뒤 남는 시간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다양한 사람 만나고 이것저것 다른 나라에서 색다른 경험을 더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애초에 그렇게 하려고 직장도 관두고 유학을 간 거였다) 올초 들어서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미진한 구석이 없느냐면 그런 건 아니다. 물질적으로는 확실히 스웨덴에 있을 때보다 조금 넉넉해진 것 같지만 심적으로 행복해지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기회를 만나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답은 내 속에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번 여름휴가는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내가 걸어온 길, 나아갈 길을 재확인하는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만끽하면서 지금 현재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현재 자기의 모습이 마음에 들고 그래서 사랑하는 감정의 상태라고 개인적으로 정의하는데 올여름 가족 곁에서 휴식하는 내 모습이 그에 가깝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