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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Dec 01. 2024

무게를 견디는 법

아침 햇살이 흐릿하게 창을 스치고, 방금 내린 커피 향이 부엌에 퍼진다. 나는 익숙한 손길로 컵을 들어 올리며 생각한다.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펼쳐지겠지. 그렇게 몇 번, 혹은 몇 십 번을 생각한 하루를 보내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매 순간, 내가 살아내는 이 작은 일상이 곧 나의 철학이라는 것.


니체는 '삶을 사랑하려거든, 고통도 사랑해야 한다'라고 했다. 처음 이런 맥락의 글을 읽었을 땐, 사랑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억지로 사랑하라는 말로 들렸다. 고통을 사랑한다고? 그건 도대체 어떤 감정일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무겁기만 한 순간을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출근길 버스 창문 너머에는 아침 도시가 흘러간다. 도로에 엉킨 자동차들,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피로와 희망. 이 모든 장면이 내게도 고단한 일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무게를 지고 걸어간다. 어쩌면, 삶의 의미란 무게를 짊어지고도 균형을 잡아가는 기술에 있는 것 아닐까.


나의 무게는 어떤가. 미래에 대한 불안. 사소한 실수로 느끼는 죄책감. 정의하기 싫은 순간. 그런 순간들이 나를 무겁게 내리누를 때, 나의 마음가짐을 떠올린다. 나는 하루를 살아내는 거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부러 소리를 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조금 더 가지지 못한 걸 억지로 추구하려는 마음은 고통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무언가가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조차도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일상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나의 기술 중 하나이다.


동시에, 나는 작은 아름다움 들을 붙잡으려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저녁 무렵 내 방 창가를 비추는 노을빛, 그리고 누군가 건넨 고맙다는 사소한 말 한마디. 이 작은 순간들이야말로 나를 삶으로 이끄는 힘이다. 세상이 흐릿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 순간들을 더듬어본다. 그것들은 언뜻 사소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가장 깊은 무게를 견디게 해주는 단단한 기둥들이다.


삶에서 무거운 순간들은 늘 나를 시험하듯 찾아온다.  그 하루의 끝에 혼자 산책을 나와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는데, 옆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잎은 가을바람 속에서 힘겹게 흔들리며 나무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나뭇잎은 떨어지는 순간조차도 아름다웠다. 나뭇잎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삶도 이렇지 않을까.' 비록 흔들리고, 떨어지고, 부서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은 생각이 그렇더라도 당장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를 짓누르는 어떤 것들은 여전히 무거웠고, 무거웠다. 다만, 내가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하루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나를 이루는 한 부분임을 받아들였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한 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익숙한 손길. 실없이 나누는 일상적인 얘기들 까지도. 이 모든 일상의 리듬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설핏 생각이 들었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란 이런 것일까.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한다면, 나는 오늘을 기꺼이 다시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삶은 때로는 무겁고, 종종 아프고, 자주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그 무게가 바로 나를 살아내게 한다.


이제 삶의 무게를 어떻게 벗어날지 묻지 않는다.

이 무게를 어떻게 안고 갈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어제와 같은 커피 잔을 들고, 다시 한번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며 되뇌었다.

"충분하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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