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세상이 손에 잡힐 것 같던 시절이었다. 잔뜩 쌓인 책 속을 거닐고, 친구들과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대화와 꿈의 나열. 그 자유로움 한가운데서 나는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내 또래 남자에게 으레 그렇듯 군대는 내 마음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군대에 가야만 했다.
군대가 싫었다. 이제야 제대로 맛보는 자유로움을 내게서 앗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책을 읽었다. 아니, 그래서 책을 읽었다. 키케로의 의무론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의 논리가 마치 오래된 법전처럼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는 인간의 삶을 이끄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의무를 꼽았다. 의무는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나는 그 말에 반발하고 싶었다. 스물한 살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그 자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이었으니까.
입대 준비를 하며 나는 늘 내 안의 두 목소리와 싸웠다. 한쪽에서는 "네가 누려야 할 시간이잖아. 왜 지금 멈춰야 하지?"라고 속삭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 또한 네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대학에서 배우고, 도전하고, 누리고 싶었던 그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키케로는 말했다. “의무는 선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본성이다.” 하지만, 그 고귀함을 위해 내가 지금 이 젊음을 바치는 것이 정당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소의 첫날밤, 맨손으로 쌓인 눈을 치우느라 퉁퉁 부은 두 손을 보며 고요 속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스물한 살의 나에게 의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법으로 정해진 역할일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더 큰 공동체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어떤 약속일까? 키케로가 말한 의무란 나를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실현하는 길임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그 깨달음을 몸으로 이해하게 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행군하던 날, 동료의 짐을 나누어 들며 느낀 묵직한 무게. 반복적인 일과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생긴 작은 웃음들. 그 모든 순간들이 내가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어떤 가치를 위해 서 있다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스물한 살의 자유로움만으로는 알 수 없던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내적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자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서의 나날들, 새벽까지 읽던 책들, 그리고 친구들과 떠났던 짧은 여행들. 그 모든 기억이 마치 멀어진 별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나는 키케로의 또 다른 말을 떠올렸다. “가장 고귀한 의무는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다.”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지금 내가 진실한가? 이 시간이 정말로 나를 이루는 일부인가? GOP 초소에서 북한땅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러나 끊기지 않게 계속 생각해 나갔다.
의무를 다하는 시간은 단순히 나의 자유를 빼앗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내 자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임을 알게 했다. 물론 이해했다고 군대에서의 생활이 단숨에 좋아졌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고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자유를 갈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유가 무책임한 방황이 아니라, 의무를 다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했다. 키케로가 말한 의무는 나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돕는 계단이자 사랑이었다.
전역 후, 스스로 의무와 삶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스물 하나와 둘의 해는 신기루같이 지나갔다. 하나와 둘의 해 동안의 많고 많은 글자와 고민들은 '나와 주변 사람이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치환되어 내 마음속에 일렁거렸다. 그 시절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철학이 고작해야 그 정도의 크기였나 싶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의무를 다하고 싶은 선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함께 웃으며 잘 지내자는 마음이 나의 다음 해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