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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 서다

by 현묵





넓은 바다 앞에 서면,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한없이 넓은 수평선으로 시선을 뻗는다. 고요한 해안에 밀려오는 물결은 결코 단순한 자연의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점의 물방울이 모여 이루는 그 움직임 속에는, 우리 삶의 소소하면서도 심오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물결은 스스로의 길을 찾아 흐르고, 한때 잔잔하던 표면 위에 갑자기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다시 이내 잔잔한 여운으로 자리를 채운다.


바람이 불어와 물결을 일렁일 때, 그 속삭임은 마치 우리 마음 한편에 있던 아련한 기억을 건네는 듯하다. 한순간의 격동이 지나고 나면 남는 고요 속에서,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과거의 흔적과 마주하며, 눈앞에 펼쳐진 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결은 언제나 일정한 리듬을 잃지 않고 밀려오고 물러가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과 기억의 잔상들이 숨어 있다.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넘어, 우리 각자의 삶이 겪는 흐름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때로는 돌연히 밀려오는 파도에 모든 것이 휩쓸려 나가는 듯한 두려움을 마주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안에 잠재된 용기와 결단이 피어나는 순간도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여정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지나간 파도의 잔영이 해안에 남듯, 우리 또한 한때 흘러간 순간들이 남긴 자취를 통해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하나는 오랜 시간 동안 쌓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우리의 삶도 작고 소중한 순간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잔잔한 물결이 해안을 어루만질 때마다,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불안과 동시에 피어오르는 희망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마치, 언제나 변화하는 파도의 모습을 닮아, 우리의 일상도 예측할 수 없는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 움직임은 정해진 방향 없이 무심코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모든 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걸어온 길은, 때론 세차게 몰아치는 물결에 흔들리며 또 때론 잔잔하게 다가오는 온기를 품고 있다. 스스로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우리는 그 물결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 해안에 닿은 파도의 자취는 순간의 흔적이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결단과 다짐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해가 서서히 얼굴을 내밀 때, 물결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그 한 줌의 빛이 어둠을 물리치며 드리우는 따스한 온기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격동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잔잔한 평온 속에서, 우리 내면에 자리한 깊은 울림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바다는 우리에게 한없이 넓은 가능성과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속삭인다. 밀려오는 파도의 한순간의 격동과 이내 찾아오는 고요함은, 우리 존재의 복잡한 면모를 은은하게 비춰준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잔잔한 초대처럼,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일깨운다. 눈을 감고 파도의 소리를 들으면,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한때 겪었던 아픔과 기쁨, 그리고 다짐의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바다의 물결은 단순히 흘러가는 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경험과 기억, 그리고 우리 각자의 작은 세계가 담겨 있다. 매 순간 변해가는 그 풍경은 우리에게 삶의 덧없음과 동시에 소중함을 일깨워 주며, 한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오늘도, 이 넓은 바다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파도의 흐름에 귀 기울이며, 한걸음 한걸음 나에게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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