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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Kong Feb 21. 2018

커리어의 갈림길에 서다. 케빈 필라

제이스의 센터필드를 지킬 선수는 누구인가



커리어의 갈림길에 서다. 케빈 필라

제이스의 센터필드를 지킬 선수는 누구인가

(제이스의 '슈퍼맨' Kevin Pillar)


[호수프레: 호수비와 코스프레의 합성어로, 일반적인 수비수라면 편하게 잡을 수 있는 공을 간신히 잡아내어 팬들로 하여금 마치 호수비를 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플레이를 지칭하는 야구용어]


당연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용어다. '호수프레'라는 단어는 인터넷 야구팬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되는데, 평범한 외야수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을 야수의 잘못된 타구판단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겉보기에는 멋지게 잡아냈을 때 이를 조롱하기 위해 주로 쓰이고 있다. 같은 타구라도 멋진 슬라이딩을 통해 잡아내면 호수비를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Statcast를 통해 Catch Probability라는 새로운 지표가 제공되어, 특정 외야수가 얼마만큼 어렵고 대단한 수비를 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타구의 수비 난이도에 따라 별 1개부터 별 5개를 부여하는 이 직관적인 지표는, 팬들로 하여금 DRS나 UZR 혹은 UZR/150같은 복잡한 세이버 지표를 보지 않더라도 야수들의 수비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Out made with a catch probability of 91-95% - 별 1개 catch
Out made with a catch probability of 76-90% - 별 2개 catch
Out made with a catch probability of 51-75% - 별 3개 catch
Out made with a catch probability of 26-50% - 별 4개 catch
Out made with a catch probability of 0-25% - 별 5개 catch


(브레이브스의 중견수 Ender Inciarte의 별 5개짜리 멋진 수비 / 캡처: MLB.com)


하지만 이러한 Fielding Metrics는 어디까지나 경기가 끝난 이후 전문가들의 기술적인 분석을 통해 산출되는 지표로, 일반적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는 것은 타구를 잡기 위한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멋진 슬라이딩 장면들이다. 마치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듯한 점핑 캐치나 담장을 타고 홈런성 타구를 건져내는 허슬 플레이들은 그 즉시 관중들을 홀리고 또 이후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기록되어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


그러다보면 팬들은, 객관적인 기록과는 상관없이, 슈퍼 캐치 장면을 많이 연출하는 선수를 최고의 수비수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 선수의 수비력을 무의식중에 과대평가하게 된다. 타구를 처리하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에 슬라이딩 캐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야수의 잘못된 타구판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관중들의 판단은 그들의 환호와 감탄 속에 잊혀지곤 한다.



지난 3년간 제이스 야수진의 변화

(제이스의 강력한 선발진)


시작부터 갑자기 '호수프레'같은 생소한 인터넷 야구용어와 Catch Probability같은 전문적인 수비 지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제이스의 중견수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타격의 팀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제이스의 강점은 투수력에 있다. 특히 5인 선발 로테이션의 강력함은, 이들이 모두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리그 최상위권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16년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5위 수준이었던 투수력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에 반해 야수진은, 특히 외야진의 공격력은 2015시즌 이후 Jose Bautista의 노쇠화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불안정해왔다.


30여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던 2015시즌의 [Ben Revere - Kevin Pillar - Bautista]조합이 장타력과 수비 그리고 출루라는 모든 요소를 갖춘 최고의 트리오였던 반면, 이듬해 외야진에는 수많은 불안정성이 존재했다. 우익수 자리에서는 Bautista의 노쇠화가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했으며, Michael SaundersMelvin Upton. JR가 전후반기를 나눠 지킨 좌익수 자리에서도 눈에 띄게 공격력이 하락했다.


이러한 와중 2015시즌만큼의 꾸준함을 보여준 유일한 선수는 중견수 Pillar뿐이었다. 비록 공격 지표들은 2015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하락했지만, 중견수로서의 모든 수비지표(DRS, UZR, UZR/150)들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이에 아쉬웠던 2016년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며, 그가 제이스의 센터필드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Kevin Pillar의 15, 16시즌 공격 및 수비 지표 / 출처: Fangraphs.com)


그렇게 시작된 2017시즌, 모든 팬들은 제이스의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달콤한 꿈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방어율 1위를 차지했던 에이스 Aaron Sanchez의 물집부상을 시작으로 제이스는 최악의 4월을 겪었고, 메이저리그 전체 25위의 팀OPS 그리고 전체 14위의 팀ERA를 기록하며 AL동부리그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투타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문제인 시즌이었지만, 그 중 더 최악은 공격력이었다. 클리블랜드로 떠난 Edwin Encarnacion과 DL로 떠난 MVP 3루수의 빈자리는, 마침내 기량이 만개한 레인저스의 1라운더 1루수가 홀로 채우기에 너무나 크고 깊었다. 이렇게 팀을 대표하는 거포들의 부재는 팬들로 하여금 공격력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화살은 다름 아닌 Pillar에게로 향했다.



강력한 중견수를 향한 팬들의 갈증

(미래의 프랜차이즈 스타에서 제이스 역사상 최악의 먹튀가 된 Vernon Wells)


2017시즌이 끝나가며, 제이스를 대표하는 거포들이 시원하게 홈런을 때려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았던 Pillar의 공격력 문제가 서서히 수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공격력을 갖춘 중견수의 영입을 원하는 목소리들이 때맞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팬들의 요구와는 달리, 지난 10여년 동안 제이스의 중견수 공격력이 긴 기간 안정적으로 좋았던 적은 많지가 않았다. 제이스의 1라운더 출신 Vernon Wells의 기량이 7년 1억 2,600만 달러라는 장기계약을 맺은 직후인 2007년부터 거짓말처럼 추락한 것을 기점으로, 제이스의 센터필드에는 불안정성이 가득해왔다.


(제이스 중견수 최다출전자의 wRC+ / 출처: Fangraphs.com)


2007년부터 2009년까지 Wells의 활약은 계약규모 대비 재앙에 가까웠으며, 그나마 2010시즌 31홈런과 리바운딩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LA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된 것이 다행인 수준이었다. 2011년에는 3명의 선수가 중견수 자리를 나눠 맡았지만, 그 누구의 OPS도 7할을 넘지 못하며 최악의 wRC+인 66을 기록했다. (당시 좌익수로는 NC다이노스 선수였던 Eric Thames가 뛰었다.)


다행인 것은 Colby Rasmus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넘어와 고정적인 중견수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1라운더 출신이었던 Rasmus는 제이스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기 시작한 2012년부터 3년간, 연 평균 20개 가량의 홈런을 쳐주었다. 게다가 2013시즌에는 wRC+ 130을 기록함과 동시에 커리어 최다 F-war인 5.1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시즌 종료와 함께 FA자격을 얻어 휴스턴으로 떠났다.


(06년 이후 400타석 이상 중견수 공격력 엘리트 시즌의 기록 / 출처: Fangraphs.com, Baseball-reference.com)


Rasmus가 떠난 빈자리는 2015시즌부터 자체 팜 출신인 Pillar가 이어받았다. 2011년 드래프트 9라운더 출신인 Pillar는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빠른 2년 만에 빅리그 무대를 밟았는데, 주전 중견수 자리를 사실상 보장받았던 2015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슈퍼 캐치들을 선보이며 팬들의 인상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팬들로부터 '슈퍼맨'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그런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타격이었다. 메이저리그 전체를 강타한 홈런 광풍에 힘입어 이번 시즌 커리어 하이인 16개의 홈런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의 커리어 하이 OPS는 0.713, wRC+는 94에 불과했다. 그렇게 풀타임 중견수로서 3시즌이 지나고 여전히 타격에서의 발전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팀 전체의 공격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마침내 팬들은 조금씩 인내심을 잃어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자리를 위협할 경쟁자가, 7년 전 그랬던 것처럼 카디널스로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넘어왔다.



장타력을 갖춘 경쟁자의 등장

(제이스의 주전 외야수가 될 Randal Grichuk)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로저스센터에서 쳐내기도 했던 Randal Grichuk에게는 Pillar에게 없는 강력한 우위가 있다. 바로 장타력이다. 지난해 5월, Statcast 도입 이후 카디널스 선수로는 최장거리인 478피트 짜리 홈런을 쳐내기도 했던 Grichuk은 제이스의 외야에 강력함을 불어 넣어줄 선수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장타력 외에 팬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수비력이다. 빅리그 데뷔 이래 Grichuk은 주로 코너 외야를 맡아 플러스(+)급의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특이한 이력은 2016시즌에 있는데, 주전 중견수로서 900이닝 이상을 출전하면서도 솔리드한 수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UZR과 UZR/150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긴 했지만, 동시에 DRS 7을 기록하며 중견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이다.


(시즌별 Grichuk 최다 이닝 소화 수비 포지션별 기록 / 출처: Fangraphs.com)


그렇다면, Pillar의 지난 시즌 수비력은 어떠했을까? 팬들이 기억하는 '슈퍼맨'의 모습만큼 압도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었다고 기록도 말하고 있을까?


팬들의 머리속에 남은 잔상과 달리, 그의 수비력은 2016시즌에 비해 훨씬 퇴보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DRS, UZR 그리고 UZR/150이 모두 일제히 하락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Pillar의 이러한 퇴보가 우려되는 이유는, 그의 3년차 수비지표 하락이 전임자였던 Rasmus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26세의 나이로 제이스의 센터필드에서 15.2점이라는 커리어하이 UZR/150을 기록했던 Rasmus는 2014년, 27세 시즌을 맞아 -15.3점으로 UZR/150이 하락했다. 외야수의 수비범위를 측정하는 지표인 RngR이 폭락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UZR은 ARM, RngR 그리고 ErrR의 조합으로 도출되는 수비지표로 0점을 평균으로 잡는다. UZR/150은 150경기를 출전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UZR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려스럽게도, Pillar의 수비지표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7세로 맞이한 2016시즌 커리어하이 수비력을 보여줬던 Pillar는 28세 시즌이었던 지난 2017년 UZR/150이 급락했는데, Rasmus와 마찬가지로 RngR이 급락한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수비력 하락 직전해와 당해 수비지표 비교 / 출처: Fangraphs.com)


외야수의 수비범위가 하락하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하지만 정상급 외야수의 타구 판단이 한 시즌만에 흔들리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주력의 하락일 것이다. 선수의 주력이 하락하는 데는 부상 혹은 노쇠화가 주요 원인이 되는데, Pillar에게 심각한 부상이나 수술 경력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쇠화가 주력하락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20대 후반의 선수에게 노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어색할 순 있지만, 실제 다양한 에이징 커브 이론들에 따르면 메이저리거의 기량 하락이 시작되는 시점은 얼추 20대 후반이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Pillar의 신체적 기량은 이제 하락기에 접어들었으며, 당장 평균 이하의 주력을 보이지는 않겠으나 주력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즉, 그의 수비력이 퇴보 혹은 현상유지는 할 수 있으나, 전성기 수준으로 좋아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의 수비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Pillar는 그의 전임자가 휴스턴에서 그랬던 것처럼 코너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wRC+가 100을 넘지 않는 코너외야수를 필요로 하는 팀은, 메이저리그에는 단언코 없다. 


또 한가지,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Statcast의 Catch Probability를 보더라도 Pillar는, 평균 이상의 아웃카운트를 만들 경우 플러스(+) 수치를 부여받게 되는 OAA에 있어 -2를 기록하는 등 그리 우수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반면 새롭게 제이스에 합류한 Grichuk은, +2를 받은 OAA는 물론이며 각 난이도 별 수비성공 수치에서도 Pillar보다 더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중견수와 코너외야수라는 포지션의 차이는 감안해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두 선수의 2017시즌 수비 기록 / 출처: Baseball Sarvant)


이렇게 몇가지 지표들을 통해 Grichuk의 수비력이 생각보다 우수할 수 있으며, Pillar의 수비력은 생각보다 저조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글을 마치기에 앞서 한가지 사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은 바로, 외야 수비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측면에서든 PillarGrichuk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두 선수의 수비력은 '무조건적으로' Pillar의 우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경기에는, 불공평하게도, 타격만 잘하면 되는 지명타자는 존재하지만 수비만 잘하면 되는 지명수비는 존재하지가 않는다. 따라서 두 선수의 공격적인 기여도까지 감안하고 본다면 과연 이번 시즌에도 Pillar에게 센터필드를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팬들의 의문은 매우 합당한 것일 수 있다.


(두 선수의 커리어 누적 공격지표 / 출처: Fangraphs.com)


따라서 다가올 2018시즌, Pillar가 공격 혹은 수비에 있어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자리는 5년 전 그랬던 것처럼 카디널스 출신의 빅뱃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현실화 된다면, 다시금 제이스의 센터필드에서 슈퍼 캐치를 보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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