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입문 과정
우리는 코끼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인가? 아니면 동물의 세계에서 본 순진무구한 코끼리 모습인가? 그 어떤 모습이던 코끼리는 고대로부터 우리에게 선(善)의 상징이다. 이런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존재도 그 막강한 육체에서 나오는 힘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열하일기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도 코끼리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바로 남해자(南海子)의 코끼리 이야기다. 청나라 강희 시대, 북경 외곽의 남해자에 두 마리의 사나운 호랑이를 사육하고 있었다. 야생성이 살아있는 호랑이를 길들일 수 없자, 코끼리 우리에 호랑이를 들여보냈다. 코끼리가 몹시 겁을 먹어 그가 가진 길고 육중한 코를 휘둘러 두 마리의 호랑이를 죽여 버렸다. 코끼리는 낯선 냄새를 싫어해서 간혹 우리에 들어온 다른 짐승을 죽이는 일이 있다고 한다. 코끼리가 의도하지 않고 호랑이를 죽인 것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에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통영에 와서 별 볼일 없이 지내던 나에게 통영을 알아가는 과정도 수월찮았다. 무엇보다 정신적 나약함으로 무장한 내가 통영의 강한 뱃사람 기질과 낯선 냄새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새 또 어울리지 못하고 숨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코끼리와 같았다. 처음 호기심으로 시작한 내가 그들과 어울리며 점차 영역을 넓혀가려 할 때 보이지 않은 코끼리의 코가 날아오곤 했다. 그들의 냄새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귤이 넘어와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회남(淮南)에 심은 귤을 회북(淮北)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성어다. 환경이 만든 자연적 현상을 인간사회에 빗댄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누구든 귤이 될 수 있고 탱자가 될 수 있다. 나눔문화에서는 큰 씨앗이 싹터 문화의 호혜성(互惠性)을 키울 수 있지만 오지랖이 팽배한 커뮤니티에서는 문화의 편협성偏狹性)이 싹틀 수 있다. 통영은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곳이지만 이곳의 문화적 편협성에 적지 않게 놀랬다.
하지만 통영은 나에게는 기회의 땅.
10년 넘게 대학에 강의와 논문을 끌쩍거리다 경력단절 여성의 길로 걷게 된 나에게 통영은 기회의 땅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감성을 불러일으킨 곳이다. 그런 열망이「내가 본 진짜통영」이란 여행에세이로 엮어졌다. 내가 느꼈던 통영의 아름다움을 통영을 방문하고 싶은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한해 600만 이상 관광객이 방문하는 통영은 13만 정도의 소도시지만 그 속에 감춰진 열정과 애향심은 대단하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에 글을 올려보았고 그런 단초들이 한권의 책이 되었다. 내 나이 불혹(不惑), 어떤 말에도 좌지우지(左之右之), 미혹(迷惑)되지 않는 나이. 나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통영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