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해가 지는 게 아쉽다
생각이 많아질 때는 산책을 나가는 것이 좋다. 일기장 앞에 펜을 잡고 있을 때보다 더 빠르게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져 밀도 있는 사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테마는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지난 6년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대테마는 '일'이었다. 대기업에 마케터로 입사하여 여러 팀과 프로젝트들을 거쳤고, 일머리와 체력을 뜨겁게 담금질하며 성취와 실망을 번갈아 느끼고 지냈다. 그렇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난 회사에서의 성취가 내 이력서의 골격을 갖출 수는 있어도, 내 본질을 관통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내 인생이나 존재의 의미와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회사 밖에서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취미를 가지고, 일 이외의 삶을 누리며 다채롭게 채워보라는 조언도 솔깃하다.
그치만 일을 분리하고 삶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특히나 오버타임이 많은 직장을 다니는 내게 일은 내 삶의 방식, 주거 지역과 환경, 노동 시간, 휴식의 패턴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주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 걷는 걸음을 멈추고, 인생의 방향을 전면 개조해야할지도 모른다.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성실히 책임을 다해야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조금은 무섭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일잘러가 되는 것?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을 주는 일을 찾고 있다. 내가 진심어린 열정을 느끼고, 내 재능에 따른 역량을 신나게 발휘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언젠가, 손발이 묶인 것처럼 고립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까봐 두렵다.
조금 우습지만, 나를 움직이는 힘이 공포라면, 나는 그 공포를 돛대로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이런 방식,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때로 그 공포를 깨기 위해 두려움을 직시해야하기도 하니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나는 안정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걸친 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까?
답이 쉽게 나지 않는 현상 분석을 하다보니 마음은 복잡해지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밤의 한강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걷고 걷다가, 진한 선홍빛 길장미를 보고 매혹됐다. 해가 진 어둑한 밤에도 가로등 아래 붉은 장미가 너무 화려해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이 아름다움을 잠들기 전까지만이라도 간직하려고, 발 옆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 고이 집까지 들고왔다. 방에서 불을 켜고 본 꽃잎에는 흙먼지가 묻어있었지만, 선홍빛깔이 너무 진해 가슴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