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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ul 13. 2021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냐는 그의 물음

그와의 대화 2

그가 물었다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냐고



지난밤 그와의 대화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는 왜 아이를 낳고 싶은지, 그는 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지 하는 우리의 이야기는 적막한 공간에 복잡한 감정을 뿌리고 있었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esincera/157


<그의 마지막 물음>

아이에게 사랑을 받기 전까지 무조건 보여야 하는 내 노고와 희생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온전하게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또 다른 집착은 되지 않을까?
자기는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어?



나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건네는 물음은 나를 조금 당황시켰다.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내 욕구는 사랑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했다.


부부의 관계는 동료애로 결속되는 관계라고 친다면 부모와 자식은 끈적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떤 상황에도 끊을 수 없는 끈적한 인연 말이다.


우리는 누구든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공통분모적인 요소는 자연계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법칙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보편적인 법칙 아래 자식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



그의 물음은 날카롭고 깊숙했다.


선뜻 "당연하지"라고 외치기가 어려웠다.


우리 회사에는 많은 엄마와 아빠가 있다.


그들의 삶을 무겁게 지탱하는 힘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 가운데 주변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강한 원심력의 사랑이 박혀있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가끔 그 원심력이 지나쳐 아이에게 버겁게 느껴질 사랑도 보인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한 직장 상사분이 있다. 승진이나 교육 기회 등 어느 것 하나 어긋난 게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한 가지 어긋나기 시작한 건 자식이었다.


아이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그와의 뜻과는 다르게 공부에 손을 놓고 놀기만 했다.


그는 그럴수록 사랑으로 아이를 양육했지만 아이에게 그 사랑은 구속과 억제로만 느껴졌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다.


그의 성격과 성품을 볼 때 아마 아이에게도 완벽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와 달랐고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아이는 그의 완벽한 인생을 흔들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의 말이 계속 여운에 남는다.


“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이는 낳으면 저절로 샘솟는 사랑으로 키워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점검해야 하는 지난한 성찰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의 밤늦게까지 이어진 대화를 마치고 다음 날 가슴이 답답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는 우리 키울 때 늘 사랑만 했어?”

“그걸 말이라고 하니? 당연하지.”


엄마는 육아를 했던 기억이 너무 오래된 게 분명하다.




우리는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금쪽같은 내 새끼>이다.


아이도 없으면서 부모와 아이들의 행태와 심리, 그들의 변화해가는 노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남편은 어쩌다 같이 프로그램을 보면 ‘와, 역시...’ 머리를 흔들며 다른 일을 하러 떠나버린다.


티브이에 나오는 사연이니 놀라운 사연들이 많고 거기에 따라 내 감정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정도면 포기해버리고 싶다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인내를 보면서 머리도 가슴도 무거워진다.


그래, 아이를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생명체를 거두고 한 세상을 만드는 고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아이와 교감하는 일, 나보다 누군가를 더 생각해야 하는 일, 어쩌면 그게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일까.


어긋나 버린 관계 속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저 상처를 받으면 관계를 끊어내고 정리하며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으려 급급하기만 했다.


그 바람에 나는 사랑을 많이 연습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온전한 사랑을 위해 완전무결한 사랑을 만드는 건 허상이고 환상이다.


우리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의외로 그 실수를 자주 하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받기도 하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일을 우선 해야 할 것 같다.


설사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언정 적어도 그 상처를 보듬고 만져줄 수 있어야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두렵고 힘든 일일 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남편의 물음에 대한 답,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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