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은 크리스틴 로젠이 쓴 책으로, 디지털 기술과 가상 세계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전에는 당연히 누렸던 ‘직접 경험’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를 다룬다. “스마트폰, SNS, AI, 가상현실” 같은 매체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몸으로 느끼던 경험 · 감각 · 감정 · 관계”를 빼앗고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본문 29p
"경험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통해 즐기는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진을 보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그 사건을 다시 경험 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에 대한 감정을, 특히 극적이거나 인상적인 경험에 대한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라면 그 느낌은 "네가 거기 있었어야 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 흔해진 덕분에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수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목격할 수 잇고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할수도 있다."
이 지점이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운동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몸을 쓰려고 하는 것인지 그래서 몸으로 표현해보려고 하는 것인지 그렇게 경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느낌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험에 있어서는 정말로 "네가 거기 있었어야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하프마라톤을 완주를 했을 때 아무리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지지가 않는다. 그 상황에 적합한 하나의 단어가 있다는 일물일어설도 모든 상황들을 비켜간다. 그렇게 "당신이 경험해봐야 그 감정을 그리고 그 느낌을 알아요." 아마 이 말이 정답이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멸종(extinction)’은 동물이나 식물의 멸종이 아니라, 인간이 누리던 생생한 ‘체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해. 단순히 기술의 편리함을 얻지만, 대신에 계절 냄새·바람 소리·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잃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술을 통해 제공되는 ‘매개된 경험(mediated experience)’은 빠르고 쉽지만, 깊이와 여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면 도시 풍경을 눈치채지 못하고, SNS·메시지로만 감정을 나누면 얼굴 맞대고 듣는 위로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처럼 깊은 대화의 농도에 맞춰서 우리가 얻는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대화를 하고나면 충전이 되는 에너지가 있는 반면 방전이 되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어떤 무게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 까 한다.
이렇게 “편리함 뒤의 손실”은 단순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고 성장하는 과정’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느끼고 성장하려면 편리함을 건너 뛰어서는 안된다. 편리해지는 순간, 점점 그 모든 과정들을 잃어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깊게 느낀 건 —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하는 반성이었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보느라 지나치는 공원, 창문 열고 들어오던 신선한 공기, 학생들 웃음소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들. 이런 사소한 ‘살아 있음’의 느낌들이, 요즘 나는 기술과 일정에 쫓겨서 그냥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를 할때, 러닝을 하러갈때도 숫자라는 기록에 얽매여서 풍경들을 보지 못한 것 그게 참 문제인 것 같다. 펀런이면 어때? 아니 즐기면 어때? 그 자체로 행복하고 너무 좋은데 말이지..
‘경험의 멸종’은 단지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아. 우리가 다시 “느끼고, 살아내고, 온전히 경험하는 삶”을 되찾기 위한 제안도 한다. 예를 들어서 매일 자연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계절·날씨·향기를 의식하며 살기, 디지털 사용을 잠시 멈추고, 감각을 열어두기, 글쓰기, 손글씨, 직접 만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기,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감정 나누기 그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읽고 나서 난 “의도적으로 경험을 챙기는 삶”을 더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살리 것인지? 우리가 기술에 기대하면서 동시에 잃어가는 경험은 질은 또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야 겠다. 이 책은 “살며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 방식과 삶의 태도를 점검하게 해 준” 계기이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