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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Apr 25. 2022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28)'봄이 뭐예요?'

스물여덟 번째, 아이가 묻는다. "봄이 뭐예요~?"


며느리 채원의 이야기



 우리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아이를 둔 친구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요즘 아이의 질문이 디테일하고 어려워"

"어떤?"

"해는 어떻게 떠요?"

"오 그래서 어떻게 대답해줬어?"

"이게 정말 과학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동화적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어렵더라고. 부모의 성향도 있겠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답의 코드가 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해줬어?"

"네가 해고, 엄마가 지구야. 이렇게 빙글빙글 돌면서~" (이과생 엄마는 온몸으로 설명 중)

(다 같이 웃다가)

"그런데 아이가 '달님이 자러 가서 해님이 왔지!'라는 대답을 기대했으면 어떡해?"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말문이 덜 트인 우리 아이와 상상 대화.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아이가 쏟아내는 질문에 우리 부부는 어떤 대답들을 해주게 될까? 문과 성향의 엄마와 이과 성향의 아빠에게서 아이는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낼까?



"봄이 뭐예요?"

봄은 추웠던 겨울에 잠들었던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 계절이야. 모든 자연이 꽁꽁 숨겨놓았던 에너지를 밖으로 마음껏 뽐내기 시작하는 날이란다. 푸릇푸릇 여린 풀들이 새로 자라나고, 노랗고 분홍분홍한 꽃들이 흩날리며 반기면 천천히 조금 멍하니 걸어도 된단다. 봄은 그런 계절이야, 시작이라는 설렘과 동시에 짧기 때문에 봄을 느꼈을 때는 멈춰 서서 충분히 즐겨줘야 해.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꽃 냄새를 살짝 머금은 듯 다가오면 잠시 눈을 감으렴, 그게 봄이야.

그런 봄에 네가 태어났단다. 엄마 아빠의 봄은 너로 인해 더욱 설레고 더욱 향기로워.



이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매 해 달라질 우리의 봄 이야기가 참 궁금하다.


2022년의 봄





시어머니 명희의 이야기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요즈음에 아이들(손자, 손녀)은 이른 나이부터 사회생활(어린이집, 유치원, etc.)을 하는 덕분에 말문이 터질 때 즈음이면 봄이 무엇인지 할머니보다 더 세세히 알고 있다. 오히려 이 할머니에게 봄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손녀, 손자에게 봄을 말해주기보다는 손자, 손녀들의 봄에 대한 설명을 적어 볼까 한다. 봄에 관하여 할머니에게 말해달라 했더니 모두 문자로 나에게 답을 주었다.



봄 (spring)


서진 (10세)

봄은 저를 태어나게 해 준 계절. 제가 3월 봄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제가 있겠죠. 만약 봄이 없다면 저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며 봄은 저에게 있어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다인 (11세)

시작과 출발

B와 D사이에 C가 있어요.


시형 (13세)

새로운 시작 같아요. 겨울이 가고 봄이 왔잖아요. 또 꽃, 새싹도 다시 피잖아요.


영인 (14세)

봄은 봄이다.

3월, 4월, 5월이 봄!

빨리 지나가는 계절 벚꽃(?) 날리는 계절!



나의 소중한 손자, 손녀들! 나의 DNA 첨가되어서 탄생한 소중한 작품(?)들이다. 서진이는 자기가 태어난 무게를 실어서 설명해준 것이 너무 예뻤다. 초등학교 입학한 동생을  챙기고 무엇이든지 완벽을 꾀하는 서진이를 보면서 봄에 태어나서 화사하고, 새싹처럼 꽃망울처럼 예쁘다.


다인이는 시작과 출발이라 하면서 우리는 모두 B와 D사이에 C예요. 시작 B (born), D (die) > 사이에 C (choice). 태어났으니 일단은 봄으로 시작한다고. 그리고 선택도 잘해야 한다고. 이 학원 갈까, 저 학원 다녀볼까 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라고. 나의 인생이니까 봄이라서 검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형이는 "겨울이 가고 봄이 왔잖아요" 무엇이든 새롭게 다시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글귀였다. 꽃도 새싹도 다시 핀다고 쓴 표현 속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2022년에도 많은 도전을 하는 시형 손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인이는 "봄은 봄이다. 3월, 4월, 5월이 봄이라고"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생각나게 하는 문자였다. 빨리 지나가는 계절이라고 적은 글 속에는 벌써 중학생이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책을 많이 보는 손자라서 나에게 잡다한 지식을 알려주고 있는 손자다. 나의 사망 날짜도 알려주면서 (The death clock이라는 사이트) "할머니 그러나 여기 나온 날짜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어요"하는, 키가 180cm가 넘는, 마음도 생각도 특이한...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키만큼이나 큰 손자다.


핸드폰이 없는 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 서윤이. 핸드폰 사용을 아직 할 줄 모르는 두 돌 지난 손자 래하. 그들에게는 봄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어야 했다.


할머니가 말해주고 싶은 '봄'은 spring이다.

먼 옛날 영어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던 '용수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든지 나오니까 새싹도, 꽃망울도, 만물이 소생할 수 있는 spring이라고... (튕겨 나와서)


나는 긴 세월 동안 용수철(?)이 튕겨 나와서 느슨해진 봄을 한가로이 맞이한다. 2022년에도 맞는 봄. 오늘도 난 벚꽃 잎 떨어진 공원길을 한가로이 걷고 있다. 길 위에 한잎 두잎 내려앉은 벚꽃 잎들이 마치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처럼 다가오는 건 왜일까?



사 월 십구일 (3月19) 火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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