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원 Jun 01. 2022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30) '마스크 이전, 이후

서른 번째 이야기, 마스크를 쓰기 전과 후의 이야기


시어머니 명희의 이야기


 

 우리는 2020년부터 긴 시간 동안 마스크 지옥에 갇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 보건 기구 (WHO)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020년 1월 31일)... 2019년 11월 17일 중국 우한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 전쟁(?)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마스크 착용하는 것이 불편하고 낯설었다. 아픈 사람들만 착용했던 마스크를 온 국민이 착용하고 다녀야만 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건너서 2022년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완화되었다. (해제)


 마스크 쓰기 전에 생활은 나름대로 행복했다. 친구랑 만나서 희 노 애 락을 교환하고, 여행도 다니고, 손자 손녀의 연주회, 발표회도 참석해서 격려와 박수를 보냈었고, 오랫동안 같이 동거를 하는 남편과 맛집도 찾아다니고, 아름다운 곳으로 드라이브도 하고, 미술관도 찾아다니면서 여러 화가의 그림도 감상했었다. 또 예술의 전당, 국악당에서 국악도 관람하면서 긴 세월 지나온 여정(?)에 눈물을 흘려보내기도 했었고, 교통사고로 인하여 불편해진 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의미 있게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딸들이 나의 둥지를 모두 떠나서 쓸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함과 여유를 플러스하면서 보내고 있었던 그런 시간들이었다. 마스크 쓰기 전에는 그랬었다.


 마스크 착용한 후에 생활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부는 마스크 착용이 '생명 연장의 복지' 라고 친구들이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오래 살고 싶으면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고 아우성들이었다.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하고 있는 남편 (호흡기가 안 좋음)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운전하면서도 쓰고...

 2020년에 탄생한 나의 손자는 마스크 착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외출하려고 하면 할아버지 마스크를 찾아서 가지고 온다. 할머니도 마스크 착용하라고 손짓을 하고, 손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 쓰고 있는 사람들만 보아서 그것이 '세상이구나'인식되어 있는 것도 안쓰러웠다.


 2021년 혼인한 조카 결혼식에 예쁘게 화장하고 마스크를 써야만 했던 불편함들, 마스크 쓴 자리가 피부가 약해져서 고생스러워도 마스크 착용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옳았다. 사망자가 속출했으니까. 우리 부부는 기저질환 보유자라서 더 위험했고, 노인이 되어버린 나의 친구들은 마스크 착용으로 인하여 자존심을 지켰다고 말한 친구 덕분에 우리는 모두 쓸쓸하게 웃었다. "치과에서 여러 개의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마스크 착용 덕분에 아무도 몰랐어" 하면서 행복해하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아득히 먼 옛날 학창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2022년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완화되었다. 밖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실내에서는 거리두기를 해제하고 (마스크 착용은 필수) 그래도 아직은 '조심'이라는 단어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5월 4일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아들의 초대(?)로 관람했다. 몇 년 만에 외출인지...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 이 글귀가 떠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도 거의 지나가고 있으므로.

 노인이지만, 노인이라서 좋은 우리나라다. 모든 관람은 50% D.C 되므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창극 <춘향> 관람했다 둘째 여식의 배려로...


 엄마 : 엄마 처녀 때는 마을에서 춘향이라 했었는데 예뻐서.

 딸 : 그런데 왜 방자랑 결혼했어 ㅎㅎㅎ


그 멘트에 얼마나 웃었는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도 마스크로부터 부분적으로 해방된 것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에 감염되어서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나의 아들과 딸, 나의 어린 손자 손녀들이 조금은 편리해진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시인 '유베날리스' 말처럼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얼마나 경이롭고 귀한 것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담아야 하는 것인지 절실하게 깨우쳐 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였다. 나름대로 잘 견뎌준 나의 소중한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5월 20 금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이야기



 아이가 태어나 처음 제대로 안아보고 마주한 날,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아이가 흐릿한 눈으로 처음 본 엄마의 얼굴은 마스크로 반쯤 가린 채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두 돌이 지난 아이에게 마스크는 어떤 의미 일까.


 얼마 전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었다. 해제 첫날,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걷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참 오묘한 기분이 드는 장면이었다.


 아이의 어린이집은 어른 걸음걸이로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최근 유모차도 거부하고, 차로 가는 것도 거부하는 아이는 여기저기 참견하며 걸어서 등원을 하고 있다. 엄마랑 아빠랑 손 잡고 길을 건너고, 꽃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고, 비둘기와 참새를 쫓아 뛰어가고, 놀이터를 지나 가는데도 놀고 싶다고 떼 부리지 않고, (많이 컸다, 참) 혹시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여기저기 유심히 쳐다보며, 지나가는 모든 자동차에 말을 걸며 등원을 한다. 10-15분 정도 되는 이 시간에 나와 남편과 아이는 마스크를 하지 않고 아침 공기를 맡으며 걷는 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새삼 굉장히 소중해지는 시간이었다. 마스크 없이 길을 걷는 일이 이렇게 미소 지어지는 일이었던가. 실내에서의 마스크가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운 여름날 마스크 없이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마스크 시대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과는 만남이 단절되었다면, 마스크 시대 이후에 알게 된 사람들과는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스케줄 근무를 하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할 수 없어 맨 얼굴을 마주 할 일이 없다. 가려진 얼굴에 익숙해진 채 눈빛 만으로도 표정을 알 수 있게 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과 맨 얼굴로 마주하는 날 왠지 많이 쑥스러울 것 같다.


우리 가족들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코로나 19, 큰 탈 없이 무난하게 팬데믹을 스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차근히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의 계기로 깨달은 게 있다면 앞으로 또 어떤 팬데믹이 닥쳐도 우리는 더 돈독하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만 같다는 생각이다.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와의 첫 만남은 마스크 없이 마주 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2022.05.31.



P.S

아이가 갑작스레 수족구로 아프면서 글 발행을 하지 못했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을 새기며- 아쉽지만 5월의 글은 한 개로 남기며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29)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