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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May 29. 2018

입김처럼 쏟아지는 느슨한 말로


자의식이 술에 녹아 말캉해지는게 좋다. 조금 풀어지는 대화가 좋다. 사람은 좋아하면서 일반화든 편견이든 집단의 통제든 규격에 욱여넣으려 들면 돌연 비죽 솟아 퉁겨온 세월이다. 상투적이게도 불쏘시개는 가부장제의 전형을 조각해 둔 가족사였다. 그 탓에 말투가 전투에 특화되어 알게 모르게 치기도 치이기도 하며 다른 쪽이 예민해졌다. 꽂히는 말들이야 그럭저럭이 되는데 튀어나가는 말에 촉이 선다. 그래서 재미가 좀 없다. 이때 뇌가 술로 촉촉해지면 젤리인간이 된다. 혀도 같이 젤리화 되지만 않으면 나도 남도 편해진다. 여백 있는 깊고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까지 보태면 생각과 말이 범람해 사유에 풍년이 든다. 술의 순기능이 여기에 있다. 말로 게워내는 만취다. 숙취로 사유의 땅에 기름이 오른다.


반년에 한 번이면 충분한 이 단비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속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달마다 귀를 때린다. 해갈이 될까 싶어 설탕물 퍼마시고 애먼 그리움만 더 돋군다. 요행은 여전히 고아한 자태로 저 편에서 버티고 있다. 여백이 너른 만취가 사라지니 사는 일이 쌉쌀해 넘기는 잔마다 달다. 달거리로 도지는 적적함에 겨울이 늘어진다. 사람 좋아 외롭고 사람 싫어 외롭다. 누구 하나 외롭지 않은 사람 없으니 외로운데 외롭지 않다. 그저 얼얼해진 손끝 붙들고 불어주는 이가 고프다. 그 입이 고프고 혀가 고프다. 동네 고양이가 야릇한 소리로 울어댄다. 한적한 길 곁에 오롯이 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에 우동 한 젓가락, 입김처럼 쏟아지는 느슨한 말로 교미하고 싶은 밤이다.


2017.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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