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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Jul 02. 2024

인사업무가 싫어지던 날

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그날도 온종일 속이 울렁거릴 만큼 모니터만 쳐다보았다. 인사업무 하나만 바라보고 한참을 달려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밥 먹는 것조차 꼴 보기 싫어진 남자친구를 보고 있는 것 마냥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내가 싫어하게 된 것이 조직이라는 시스템인지, 매일 반복되는 업무인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저 구성원인지 하니면 무능한 나 자신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날들이 쌓일 만큼 쌓였을 때 퇴사를 결심했고 어쩌면 인사업무를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사람은 퇴사할 때 구차해진다. 하나같이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내심 왜 퇴사를 하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그런 것을 많이 봐 왔던 나 조차도 여전히 구차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상황을 나는 내가 아닌 대표, 혹은 그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이유 삼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퇴사를 했다. 




내가 탄 로켓이 너무 빠르다는 핑계 


그동안 덮어두었던 고민의 지점이 여러 군데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인사업무는 과연 조직에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부터 잘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경영진을 설득하고 조직을 이끌어갈 만큼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내가 경험한 모든 회사들은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인사팀에게는 다소 무관심했고, 옳은 방향이 아닌 원하는 방향으로 인사를 쉽게 결정했고, 인사팀은 그에 따라갔다. 


그런 대표나 경영진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디서부터 다시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내가 하는 생각, 갖고 있는 가치관이 과연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을 설득할 만한 논거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족한 것인지 매일 꼼꼼하게 복기하고 싶어도 내가 탄 로켓의 속도는 항상 너무 빨라서 그것을 충분히 돌이켜 볼 여유가 없었다. 


인사라는 업무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도 한몫을 했다. 내가 아무리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인사업무가 가진 그 속성 자체가 조직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할 수 없는 종속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한 조직 안에서 인사 업무의 성장은 대표의 크기만큼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이 늘어가면서 동시에 그렇다고 대기업과 같은 큰 조직이나 성과보상과 같은 난도가 높은 업무를 충분히 경험하지도 못한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자격론까지 넘어가게 된 것이다. 




비워야 채운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 나의 메모장엔 항상 어떤 생각들이 한가득이지만 가장 마지막 순간에는 두려움이 나를 입다물게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쉽게 그것을 꺼내어본 적이 없다. 나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스스로 검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빈약한 논거와 부족한 실력인 내가 결국은 자격지심에 하는 말들임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언젠가 나의 말을 번복하게 될 때를 생각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거나 혹은 오만방자함으로 써재낀 부주의한 기록들이 훗날 내 발목을 붙잡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여전히 힘들다. 이런 고민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회사로 돌아가자니 이렇게는 안된다며 스스로를 말리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간 나는 또다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새벽에 묵묵히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보며, 여기에서 변화를 주지 않은 채 돌아간다면 또한 반복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며 나를 다독였다. 내 생각이 맞건 틀리건 마음의 환기를 시켜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로 했다. 결국 나는 상처와 생각들을 마음에 묵혀두고 있는지를 찾아내어 캐내고 드러내는 작업을 조금씩 시도해 본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유산으로 지켜내며 가져가야 할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휴지통에 버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시간은 나의 여정에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미래를 위한 작은 변명을 남겨놓자면, 사람마나 겪고 있는 현실은 각양각색이니 내가 언급하는 나의 경험이 인사팀 전부의 일 있은 것처럼 일반화되지 않길 바라본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인식하는 세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나의 부족함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좀 더 높은 세상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담고 있는 것이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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