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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필닥 Field Doctor Feb 22. 2024

2월1일~2월13일 태국, 베트남 여행 정리 (1)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주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13일 (대략 2주일로 하자) 간의 여행.

일 하면서도, 육아를 하면서도 이날만을 기다렸다.

사실 말로는 기다렸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체력도 없었다.

하루하루 일 하느라 지쳤고, 특히 마지막 2주 정도는 새로 오실 원장님에게 인계까지 하면서 내 일도 해야해서 더욱 힘들고 지쳤다.

육아도 어린이집 일 신경 쓸 게 많아서 마지막에 꽤 힘든 마음이었다.

그래도 떠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아내도 나름 흔쾌히 허락해주었는데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7일, 그리고 나머지 6일을 베트남 하노이 및 사파-라오까이 근교지역에 머물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베트남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더 편하고 좋았다.

그 이유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군생활도 했던 친구라서 (심지어 동기였음) 마음이 편한 사이이고

베트남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는 박사졸업예정인 전문가이기 때문에

같은 여행이어도 훨씬 풍부한 내용을 즐길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서는 한 콘도에 머무르면서 그곳을 중심으로 내가 평소에 관심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볼 수 있었다.

사실 아기가 있으면 이중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오직 나 혼자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불교 명상 원데이 클래스였다.

왓 쑤안 독이라고 하는 사원 근처에 Monk Chat 이라는 오피스가 있다.

영어를 잘 하시는 KK라는 태국 승려가 불교 철학과 명상에 대해서 소개하고 실습하는 코스였다.

전세계에서 온 4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행복을 찾아 이 먼 곳까지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머리가 새하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도 많았다.

명상을 하게 되면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심란하고 불안하면 고통에 떨면서 시간이 흐르게 된다.

같은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명상으로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KK는 “하루에 밥을 3끼 먹으면서, 마음에는 왜 밥을 주지 않냐” 고 물었다.

마음에 밥을 주는 것이 명상인 것이다.

명상을 통해 인생의 밸런스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가정의학을 앞으로 전공하게 되면 고통에 빠진 사람들, 쉽게 치료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텐데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mindfulness 접근 방법을 약간이나마 맛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방법론으로서 명상을 넘어서서

명상으로 모든 집착을 이겨내고 해탈에 이르겠다는 불교철학적인 경지에 너무 몰입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인 세계관과는 충돌하게 된다.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겸허히 인정해야하는 세계관과

인간이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얘기 하는 세계관은 공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기독교적인 명상법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상기도 등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다음날 새벽부터 이어진 왓 도이수텝 일출 및 왓파랏, 왓우몽 사원 탐방이었다.

전직 승려가 가이드를 해준다고 되어있어서, 풍부한 스토리 텔링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사원에서 시간대 별로 이루어지는 경험들을 짜임새 있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일출이 있기 전 사원 내에서 만트라를 읊조리고 명상을 하고, 승려에게 보시를 하고,

사원의 탑을 3번 돌며 촛불과 꽃을 기부하고 소원이 쓰인 종을 걸었다.

왓 도이수텝은 밤에는 조명때문에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아침에는 빛이 꺼지고 매우 고요해졌다.

왓 파랏은 도이수텝에 비해서 아주 자연친화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원도 아름답고, 폭포도 아름답고,

풀과 이끼에 뒤덮인 파고다는 마치 지브리 만화영화에 나오는 생명력이 샘솟는 옛 유적 같았다.

이런 곳으로 명상 retreat를 하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폭포수,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집중하면 몸과 마음에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것 같았다.

왓 우몽은 동굴속에 있는 사원인데, 생각보다 깊고 개미굴처럼 서로 이어져 있어서 신기했다.

한번 와볼만 하다고는 생각함.


다른 경험들은 핑강에서 스탠드업 패들보트 타기, 오후 4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 야시장 식도락여행, 태국음식 쿠킹클래스

등이 있었다. 다 나름의 고충이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경험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패들보트는 일단 내가 어깨가 좋지 않아서, 끊임없이 긴장하며 노를 저어야 한다는 것이 꽤나 힘들었다.

내게 이런 액티비티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베트남 사파에서 진행한 트레킹은 잘 맞았다. 앞으로 걷는것, 경치보는것 위주로 해야할듯)

식도락 여행은 태국 북부 음식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시장에서도 식재료를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계속 먹어야하고, 남길 수 밖에 없는 음식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쿠킹클래스는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내가 만든 음식을 내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태국 음식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웍은 이렇게 사용하는구나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특별한 교감 없이 기계처럼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들은 사실 자세히 알아보고 신청한 것도 아니고, 사전에 미리 예약한 것도 아니다.

태국에 가서 시간이 비는 동안 뭐라도 해야 시간이 갈 것 같아서 에어비앤비나 트립어드바이저 뒤져가며

하루 이틀전에 예약한 것이므로 최고의 경험은 아닐 수 있다.

다만 내가 여행을 하면서 어떤 것에 만족을 하고, 어떤 것에 불만족 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나는 어떤 기술을 그자리에서 바로 배워서 해야하는 것들은 맞지 않는다.

스탠드업 패들보트 같은 것은 재밌어 보이긴 했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너무 긴장을 많이 하게 된다.

하다보니까 좀 편해지기도 했지만, 마음 속 깊이 편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자전거 타고 시골 경관 둘러보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자전거는 새로 배울 필요가 없고 내가 자신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쿠킹클래스도 원래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도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지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너무 깊이 교감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 끼리 스몰토크는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팀을 꾸려서 새로운 여행지를 간다거나 하는 것이 부담이다.

명상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저녁에 놀러가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다소 조용한 곳에서 정해진 세팅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는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오픈된 세팅에서 계속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인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을 식도락 여행에서도 느꼈는데, 썽태우 타고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시끄러운 야시장에서 이야기를 할 상황이 많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좀 소란스러운 환경에서는 잘 들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시끄러워도 대화를 잘 한다.

이런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생길 여지가 다분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오해 생기는것 자체가 스트레스 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새로운 사람과 스몰토크 이상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편 왓 도이수텝에서 만난 시라 (영국 출신 할머니, 은퇴하고 스페인 이비자에서 아들과 살고 있음) 와의 대화는 참 편안했다.

일단 사원을 탐방하는 것이고, 가이드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거라서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와 문화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데, 그런 분야에 대해서 많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쿠킹 클래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도

깊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고 조용한 환경에서 스몰토크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태국 여행에서 가장 만족을 했던 것은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체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참 뼛속까지 인류학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게 재밌고,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역사를 통해 유추해보고 생각해보는 게 재밌다.

그런 점에서 내게 잘 맞는 여행은

예측가능한 세팅,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 참여자들과의 적당한 교감, 역사와 문화 체험 & 풍부한 스토리텔링.

—> 이건 혼자여행일 때 해당된다. 베트남은 친구랑 여행해서 그런지 훨씬 버라이어티했다. 다음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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