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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Jul 29. 2017

교토 최고의 꼬마 술

佐々木酒造 이야기

3년 전 이야기.


교토의 기온에서 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지는 좁고 아늑한 골목길 마츠바라도리에는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과 음식점과 함께 사케 전문점들도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왔으니 당연히 사케는 한 병 사가야지 싶어서 들어간 가게.


일본말은 전혀 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호기롭게 얘기했다. "이찌방 사케가 도레데스카?"(그 땐 일본말을 정말 못해서... 지금도 못하지만 이 지경은 아닌데...)


내 형편없는 일본어를(못하는 것과 진배없지만) 감안한 주인 아주머니가 열심히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 주셨다. "나라면 이 술을 권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이게 제일 잘 팔려요. 그런데 정말 최고를 찾는다면 이걸 시도해 보시죠. 교토에서 대회에 나가 1등한 술이에요." 사실 정확히 알아들은 건 아니고, 그저 이런 얘기였을 거라 생각한다.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고, 아는 단어 몇 개 들리는 것으로 뜻을 추정했을 뿐.


교토는 게케이칸(月桂冠) 등 유명한 사케를 만드는 지역이니 당연히 사케가 좋으리라 생각했고, 별 생각없이 주인의 안목을 그저 믿었다. 최고라고 하니, 최고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술을 골라왔다. 그리고는 뒤늦게 내가 산 술에 대해 공부했다. 역시. 믿으면 복이 온다.

이 술, 쥬라쿠다이(聚楽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궁궐처럼 쓰던 교토 시내의 큰 저택 이름이다. 지금은 그 자리만 남아 있고 원래 저택은 사라졌다. 제조사인 사사키주조(양조장)가 술에 이 장소명을 붙인 것이다. 교토 최고의 사케들로 유명한 후시미는 교토 시내에서는 남쪽으로 좀 떨어져 있지만 사사키주조는 시내에 자릴 잡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양조장의 크기도 작고, 겟케이칸 같은 거대 브랜드와는 경쟁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다 그렇듯, 품질은 회사의 규모로 만드는 게 아니다. 애초에 히데요시가 여기에 자리를 잡은 것도 "물맛이 좋아서"였다고 하는데, 양조장에 이보다 좋은 터가 있기도 쉽지 않은 법. 사사키주조는 니죠성 북문 바로 앞에 있다. 관광객 대상 투어도 하기 때문에 미리 신청하면 사장의 강연이나 양조장 투어도 가능하다.


지금은 후시미가 유명하지만 사실 교토의 양조장 대부분은 원래 시내에 있었다고 한다. 사사키주조는 1893년에 창업했는데, 당시만 해도 후시미에 있는 양조장보다 시내의 양조장이 훨씬 많았다고.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사케를 빚는 양조장도 대기업화된 곳만 살아남기 시작했고, 그래서 후시미의 대기업 양조장들이 번성하면서 시내의 작은 양조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케를 빚는 일 자체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젠 소규모 양조장은 계속해서 문을 닫고 맥이 끊긴다고 하니...


어쨌든 120년을 이어온 이 회사의 현 사장은 초대 창업자의 3대손 사사키 아키라 씨. 삼형제의 막내라서 애초에는 술을 만들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가업은 큰형에게 승계될 거라고 봤기 때문에. 그런데 큰형은 어린 시절부터 "마시면 없어질 걸 만드는 일 따위는 싫다"며 가업 승계를 거부했다. 대신 큰 형은 없어지지 않는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둘째 형은 가업을 잇겠다면서 고베대학 농대에서 바이오공학과 쌀 연구를 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는 배우가 됐다. 한국에도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마미야형제'의 주연 배우 사사키 쿠라노스케(佐々木蔵之介)가 바로 이 둘째 형이다. 막내 아키라는 중문과였는데 결국 술을 빚게 됐다. 그래도 가끔 "예, 그 쿠라노스케의 동생이 하는 술집이니다"라고 하면 가게 홍보에 도움이 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고.


사사키주조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이 젊은 사사키 사장(스물다섯에 양조장을 물려받은 1970년생이다.)이 이런 말을 남겨놓았다. 인상적이다.


'교토에서 장사하려면 돈을 버는 것보다 계속하는 걸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토의 전통은 100~150년 정도 했다면 겨우 꼬마 수준이 된 것이고, 한 300년은 계속해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하는 것'이란 얘기도 있죠. 우리 양조장은 창업한지 120 년 정도 된 꼬마입니다. 하지만 모처럼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고, 제가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계속 남기고 싶습니다. 적어도 다음대까지라도. 게다가 이렇게 물 좋은

장소에서 술을 담글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마지 못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니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규모는 작지만 최고의 품질을 가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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