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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디 Nov 08. 2020

차별과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군중의 도덕

버리에 헬스트럼, 안데슈 루슬룬드의 <비스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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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군중 속에서 재구성된다. 비스트의 군중은 아동 성 범죄자와의 경계 긋기를 통해 스스로가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여긴다. 왜곡된 도덕으로 재구성한 정의는 군중 밖에 있는 사람을 향한 혐오를 견고히 하며, 군중 앞에 나선 사람의 잘못된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러고나면 이상한 질서가 생긴다.


N번 방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분노했고, 디지털 교도소가 세워졌다. 디지털 교도소의 사이트 개설자는 개설 목적을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상을 털고 사진을 퍼나르며 조롱하고 ‘즐기는’ 것은 사회적 심판이 아니다. 심판은 법이 하는 거고, 신상을 터는 건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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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은 엘리트 특권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반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소통의 형태이다(*위키피디아). 포퓰리즘 그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한으로 얽히고 펼쳐진 네트워크 덕에 부정적 감정을 쉽게 공유하는 환경을 갖춘 작금의 포퓰리즘은 선전과 선동을 이용하여 꽤 빈번하게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기에 위험하다(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아무개의 사형 청원이 올라왔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겁했다). 대중의 불만 표출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혐오해야할 논리를 세우는 것은 편협한 태도이다.


군중 속의 나는 쉽게 불평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더이상 편협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존중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사회에 속하고싶다. 그러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타인과 나의 경계를 낮추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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