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월급이 입금되었다.
사실 말이 월급이지 뉴질랜드는 2주에 한 번씩 2주치의 주급이 입금된다.
거두절미하고 월급을 까보자.
주당 30시간 일하고 있는 나는 시급 28불을 받고 있다.
(한화: 약 2만 2천원 / 2023년 2월 이후 비자 스폰을 위한 중위소득 기준이 $29.66로 인상되었기 때문에, 비자 스폰을 받기 위해선 이 소득 요건을 맞춰야 합니다.)
고로 2주에 1,680불 (한화 약 135만원), 한달 270만원 정도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걸 다 가져갈 수는 없다.
뉴질랜드는 상당한 세금을, 그것도 매번, 뗀다.
세금은 소득에 따라서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 매번 30%씩 뗀다.
(30% 실화냐?)
결국 잔뜩 쪼그라든 돈주머니에 한달 226만원이라는 초라한 월급만 남는다.
한국과 뉴질랜드, 세금은 얼마나 다를까?
한국에서는 동일한 소득에 대해 15%의 세금을 떼어간다.
소득이 많지 않은 경우 뉴질랜드 세금이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놀라운 건 고소득자의 경우 뉴질랜드 세금이 저렴하다.
뉴질랜드는 33%에서 39%까지 세율 상승폭이 크지 않은 반면,
한국은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45%까지 증가한다.
돈 많으면 한국이 살기 좋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자녀에 대한 상속세마저 없는 뉴질랜드가 부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처럼 보인다.
(어디든 서민은 살기 팍팍하네요…)
얼마 전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다.
뉴질랜드 부자 90명이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는 대국민 공개서한을 보냈다.
돈을 더 내게 해달라고 하다니, 제정신?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생각한다.
채우는 만큼 비우는, 선순환의 가치를 아는 이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뉴질랜드의 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대체로 보여지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부자들도 반바지에 쪼리 하나 신고 다닌다.
미안한 얘기지만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수천 장의 사진이 업로드 되는 인스타에는 행복 경쟁이 일어나고,
가짜 행복과 상대적 박탈감의 미묘한 경계속에 사람들은 우울을 경험한다.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행복은 경쟁이 아니니까.
나도 한때는 명품백을 산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한국 장롱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프라다와 루이비똥 가방 대신,
세쌍둥이를 낳고 샀던 기저귀 가방을 7년 넘게 메고 있다.
운동화도 그렇다. 한번 사면 구멍이 날때까지 신는다.
옷도 사지 않는다.
매일 입고 있는 이 잠옷은 20년전 엄마가 사준 잠옷이고,
굳이 새 옷이 필요할 땐 중고샵에 간다.
아이들 머리 커트에, 심지어 내 머리까지, 셀프 커트/염색하는 나.
이 정도면 돈을 모았어도 단단히 모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통장은 금세 텅장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알고싶다!)
가장 큰 이유는 뉴질랜드의 높은 물가 때문이다.
아무리 막아봐도 돈 세는 구멍은 참 많다.
냉정한 얘기지만 200만원가량의 내 월급으로는,
아들 넷을 데리고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다.
우선 렌트비가 내 월급을 초과한다. 이미 마이너스다.
주당 820불 (한화 약 66만원)의 렌트비는 한달에 260만원 가량 된다.
뉴질랜드 지역별로 평균 렌트비를 볼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방 세 개 주택 기준 주당 평균 793불 (한화 약 63만원)이 든다.
그렇다고 집주인들이 어서옵쇼,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렌트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특히, 나처럼 혹이 4개 붙은 자는 더욱 그렇다.
주택마다 인원 제한이 있는 집도 많기 때문이다.
보통 한 집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지원한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무슨 입사경쟁처럼 치열하다.
집주인은 경제적 능력, 배경, Reference를 보고 세입자를 선택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한국에 있는 남편과 공동계약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부동산에서 남편의 한국 회사에까지 연락을 했다.
정말 이럴 때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집요한 나라다…
렌트를 계약하면 갑과 을이 더욱 분명해진다.
보통 3개월에 한 번씩 집을 검사한다. (inspection)
부동산에서 체크리스트를 보내주는데,
하나하나 확인하고 대청소까지 해야 한다.
이사를 나갈 때는 더 까다롭다.
지난번 이사할 때는 이사청소 업체까지 불러 청소를 했지만,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는 덕에 결국 하루 종일 청소를 다시 해야 했다.
전세계 어디든 집이 없다는 건 큰 설움이다.
살인적인 렌트비,
그러나 충격적인 건 각종 공과금이 별도라는 사실이다.
민영화된 전기와 가스, 수도요금은 시한폭탄처럼 팡팡 터진다.
이럴 때는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그립다.
또한, 이렇게 비싼 집이지만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무로 된 뉴질랜드 집은 정말 춥다.
아침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
겨울로 접어든 지금,
우리 집에는 웬 백곰이 어슬렁거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아이들도 두꺼운 잠옷 안에 몇 겹씩 겹쳐 입는다.
그리고 잠을 잘 땐 히터를 줄이기 위해 온 가족이 한방에 모여 잔다.
이렇게 노력해도, 6월 전기세가 240불가량 나왔다.
본격적인 겨울인 7,8월에는 아마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통 300-350불가량 나온다는 주변 얘기에 그래도 선방한 느낌이다.
일년에 한 번씩 전기세 환급, 세금 환급 등이 있는데,
이럴 때는 나도 그들만큼 집요해진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하느니라…)
살인적인 렌트비와 공과금, 그리고 치명적인 물가까지.
아마 나는 서너 달에 한 번씩 수혈받는 남편의 해외송금이 없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단 양반이다.
대학에 다시 들어가 공부했던 작년에는 아이들의 국제 학비에 내 학비까지,
8만불가량 (약 6천5백만원) 더 지출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유학 후 이민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입국 전에 꼼꼼하게 계획하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고 싶다.
나처럼 계획없이 왔다간 거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영주권자가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는 이곳.
살인적인 렌트비의 잔인한 굴레 속에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이곳.
그렇게 나는 오늘도 현실의 챗바퀴 속에서 달리고 있다.
이민은 드림이 아니다.
이민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민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