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t 디자이너가 말합니다.
앞선 글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ppt로 결과물을 만드는 디자이너예요. 파워포인트가 주 툴이죠. 그래서 사실 누군가는 쉽게 보기도 해요. 파워포인트야말로 너도나도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만국 공용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래도 한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었더니 제 나름의 원칙과 정의를 내린 부분들이 꽤 생겼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오늘도 이야기하려구요. 이번 글에서는 <ppt디자인 요청할 때, 결과물 퀄리티 높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안서, PT, IR, 회사소개서 등 제가 작업하는 모든 자료들은 목적에 따라 성격에 따라 작업방식도 천차만별이지만 ppt파일 하나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점에서 결국엔 '하나의 결'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는 보통 기획단에서 디자인 요청을 받습니다.
"어디에 쓸 어떤 내용의 어떤 자료이고 언제까지입니다"
그리고 초안 파일을 함께 받아 보는데요. 일정과 내용을 대략 전달받아도 이 초안 파일을 열어보는 순간에는 언제나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자료가 왔을까? 아 제발제발제바 ~ ㄹ~"
파일을 확인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경악을 하거나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저는 초안의 상태에 따라 그 수준을 3단계로 나누는데요.
- 1단계 기초수준 - 짜깁기 수준을 말합니다. 내용이 미완성인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담당자도 (아마) 잘 모르는 단계입니다.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 2단계 정리수준 - 내용이 분명하고 하려는 말이 있는 수준입니다. 전체 흐름의 골격이 잡혀 있습니다.
- 3단계 디자인수준 - 확실한 내용이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의도적인 구성이나 아이디어가 첨가된 수준입니다. 콘텐츠가 편집되어있습니다.
ex. 적절한 이미지, 차트, 폰트 등을 사용 (아무거나x)
ex. 주저리주저리 적지 않고 완성형으로 다듬어진 텍스트 (문체, 양 등의 측면에서)
단계별로 천차만별인 초안을 받으면, 디자이너는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킵니다. 정리가 안돼 있으면 정리를 해서 보내고, 디자인이 없으면 디자인을 해서 보내고, 완성된 초안이라면 더 전문적인 스킬이나 감각을 활용하여 퀄리티를 고급 수준으로 끌어올립니다.
위에서 아래로 단계가 내려갈수록 디자이너의 분노 게이지는 높아집니다.
아래에서 위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디자이너는 더 고민하고 고차원의 작업을 하게 됩니다.
1단계에서 바로 3단계로는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시간과 보수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여의치 않다면 또 다른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디자이너에게 "이것까지 당연히 내 일이지"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소명의식이나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럴 일이 잘 없습니다. ^^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잘,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서 프로젝트에 임하신다면 분명 그건 디자이너에게도, 나아가서는 결과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나에게는 이 자료를 넘겨받아 다듬고 정리해 줄 디자이너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만들어 보세요. 이 자료는 내가 만들고 내가 끝낸다. 라는 의지와 각오로 말이죠. (예쁘게 다자인하라는 의미X)
여러분이 생각한 거대한 그림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원하신다면 디자인만 갈아 넣는다고 완성할 수 없습니다. ppt디자인이 그래요. 한 장짜리 포스터나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같은걸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전체가 흐름과 맥락이 있고 한 장 한 장 메시지가 있는 이야기 책을 만드는 거예요 우리는. 함께요.
누군가 보고 지루해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내가 기획한 '쇼'에 빠져들게 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환호와 박수를 받아내는 게 우리 공동의 목표 아닌가요.
만약 기획 자체가 부실하고 알맹이가 없는데 디자인이 매 페이지마다 장난 아니야, 난리 났어 막. 현란 화려 와 쩐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내용이 없는데 말이죠.
본 글은 어디까지나 ppt자료들을 디자인하는 조금은 특수한 저의 주관 100%의 의견임을 말씀드립니다. 모든 디자이너가 같은 생각, 같은 방식은 절대! 아니에요.
저만 그럴 수도 있어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