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이 Oct 17. 2020

매갈이나 일베나 똑같아

-영화 서프러제트와 미러링

 영화 <서프러제트>의 배경은 20세기 초 영국이다. 주인공 모드 와츠는 세탁소에서 감독관으로 일한다. 그녀에게는 다정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으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녀의 평화는 세탁물 배달을 가던 중 과격한 시위 집단과 맞닥뜨리면서 깨진다. 모드는 시위 무리 중 세탁소 동료인 바이올렛을 발견한다. 바이올렛은 일터에서 서프러제트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조롱을 당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마음씨 착한 모드는 바이올렛에게 손을 내밀게 되고, 점점 서프러제트 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모드는 본인은 서프러제트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국회에서 세탁소를 대표해서 여성 참정권 발언을 하고, 시위에서 여성 참정권을 외치지만, 여성 참정권론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모드 남편 대사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여자랑 어울리다가 당신도 같은 취급을 받게 돼. 당신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모드는 처음에는 서프러제트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바이올렛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나, ‘만약 딸이 있었다면 딸도 그녀와 동일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다시 집회에 나간다.  그녀는 어느새 서프러제트 집단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되어 동료들과 함께 총리의 별장을 폭발시키고 수감된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변화시켰을까? 모드가 서프러제트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들에는 항상 다음 세대 여성들이 그녀와 동일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그리고 모드의 용기 덕분에 최소한 한 명의 어린 여성은 그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모드는 서프러제트 활동의 과격함을 지적하는 수사관의 말에 '우리가 창문을 깨고 물건을 불태우는 건 전쟁만이 남자들이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메갈은 메르스 갤러리와 이갈리아의 딸의 합성어로 메르스 시기 홍콩에 입국한 한국 여성들에 대한 지나친 비난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반 여성혐오 웹페이지의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웹페이지지만, 페미니스트를 대표하는/비하하는 단어로 쓰인다.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너도 메갈이냐?’며 낙인을 찍는 데 사용된다.


 메갈이 페미니스트 비하 단어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과격한 여성혐오 용어들을 성별을 바꿔 사용하는 미러링 활동을 했기 때문이 크다. 사람들은 메갈의 미러링을 통해서 남성 커뮤니티의 언어들이 얼마나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지를 깨달았다.*


메갈은 그 외에도 다양한 반 여성혐오 활동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악질 성인물 사이트 소라넷을 공론화시킨 것이다. 리벤지포르노, 강간모의, 몰카, 여성혐오 표현의 온상지였던 소라넷은 공론화와 사회운동 덕분에 결국 폐지되었다.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은 ‘메갈이 미러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소라넷이 폐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한국일보, 2018.11.29). 


 그러나 메갈이 가져온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미러링의 목적이 여성혐오 단어가 가지는 심각성을 인지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메갈이 너무 과격하며, 사회악이라고 말한다. 여성 혐오 표현, 된장녀에 대한 국민적 조롱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어왔지만, 그동안은 지적받거나 사회적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여성들이 성별을 반전해서 사용하는 순간부터 이 단어들은 주목받고, 검열되었으며, 공격받았다. 


"나도 성차별은 반대하지만, 메갈이나 페미니스트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페미니즘이 너무 과격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태동부터 성차별 철폐 운동은 늘 과격하다고 공격받았다. 1910년대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도,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들도.


 한나 아렌트는 사회 변화를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으로 비유했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알을 깨는 폭력이 필수적이다. 사회 변화가 폭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아니지만 알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말만 하는 것은 결코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미국의 속담 중 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무슨 행동을 불사 할지 말해야만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사람들이 저항에 적극적이지 못하는 이유는 성과가 열심히 싸운 사람들에게 독점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지 열심히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면 아무도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미러링 단어가 불편하다면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불편을 느끼라고 만든 단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혐오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는지 경악스럽다면, 여성들이 그동안 들어온 표현에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서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길 바란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참정권이 윗 세대의 과격함 덕에 가능했던 것처럼, 우리 아래 세대 여성들은 모든 종류의 여성혐오 표현으로부터 자유롭길 소망한다.



*각주 1:  각종 여성 혐오 표현은 보적보, 삼일한, 상폐녀, 보전깨, 김치녀와 개념녀, 보슬아치 등이 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널리 사용된 표현인 김치녀와 된장녀, 메퇘지, 맘충 등은 단어는 여성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낙인으로 작용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탈코르셋 3. 탈코르셋, 의무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