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약사 Apr 22. 2020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故설리에 대한 기사를 봤다. 신동엽이 설리에게 제일 행복했을 때가 언제냐고 묻자 ‘저는 진짜 행복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고 한다. 외모도 예쁘고 어린 나이에 경제적 성공을 이룬 그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그녀. 당연히 행복한 날들이 많았을 줄 알았는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만큼 사람들의 악플 때문에 마음의 굴곡은 있을지언정, SNS 사진 속 웃는 모습은 진짜인 줄 알았는데… 단 한번도 진짜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안타깝고 슬프다. 그만큼이나 행복한 것은 어려운 것인가보다. 







아빠가 2017년 폐암3기 판정을 받고 나서 우리 부모님의 삶, 나의 삶이 유한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내 삶은 영원할 줄 알았다. 


의사선생님과 첫 면담하는 날, ‘몇 개월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걸까? '몇 기'라는 말도 없이 '몇 cm정도의 종양이 있다'는 건조한 말만 하셨다. 그래서 대체 '산다는 거야? 죽는다는 거야?'  


항암치료를 받고 암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수술이 잘못 돼서 아빠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아빠는 수술을 잘 받았고 이후로 2년 넘게 잘 지내오고 계신다. 중간에 3번의 큰 폐렴이 지나가서 다시 죽음이란 단어를 수시로 떠올려야 했다. 지난 주말은 아빠 생신이었는데 스테로이드 주사 부작용으로 부은 얼굴도 많이 가라앉았고 예전처럼 아빠가 농담도 할 만큼 컨디션이 올라왔다. 다음 달에는 암 판정 이후 처음으로 전신 PET촬영을 한다.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벌써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빠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오늘이 나에겐 참 특별하다.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금새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게 나에겐 참 중요하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사는 게' 나에겐 '정말 중요한 것'이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우선 바뀌었다. 부모님 마음에 못 박을 행동과 말은 하지 않는다. 돌아가시고 나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사랑표현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여전히 원하는 만큼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카톡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우리 아들, 딸 보여주려고 영상전화를 했다면 이제는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영상전화를 한다. 매일 출근길, 약국에서의 모습도 사진으로 보낸다. 매일 매일 행복한 모습, 웃는 모습, 내 꿈을 위해 사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드린다.


아빠가 준 선물은 그것만이 아니다. 내 삶 또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내일 당장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많은 게 두려웠다. 혼자였을 때는 실패해도 성공해도 내 인생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하는 행동이 아이들의 인생에까지 주홍글씨처럼 드리워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모든 게 아이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게 맞는 줄 알았다. 돈을 버는 이유도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여유가 많다면 당연히 내 삶이나 남편의 삶도 돌보겠지만 언제나 빠듯한 게 가정경제니까. 






그런데 내일 당장 내가 죽는다면?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랄까? 혹은 우리 아이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랄까? 생각하니 모든 답이 내려졌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행복을 위해 도전을 두려워 말고 하나하나씩 해보기를 바란다. 넘어지는 것도 행복이고 이루는 것도 행복이다. 왜냐면 바로 네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 타인의 시선 신경쓰지 말고 많이 웃고 많이 감동하고 많이 사랑하며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랄까? 나는 우리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랄까? 이 또한 똑 같은 답이 내려진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오늘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오늘 하루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바라는 삶, 우리 부모님에게 바라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저 엄마는 자기 인생만 신경쓰는 이기적인 엄마라는 평가가 두려웠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남의 시선에 신경쓰느라 하고 싶은 거 하지 못했다…'라는 묘비명을 적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위해 행복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과 우리 부모님을 위해 행복하고 싶다. 나 자신의 행복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