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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May 12. 2020

코로나보다 무서운 아랫집 인터폰

2년 사는 동안 내내 따라다닌 인터폰 환청.

아이들이 쿵쾅대는 소리에 내 마음도 쿵쾅댄다. 그러고는 이내 안도한다. '아, 여기 아파트 아니지~'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같은 반응을 하셨다. '아이들이 뛰니깐 아랫집 생각이 먼저 난다~', '아이들이 뛰어서 나도 모르게 뛰지 말라고 할 뻔했어~







이전 집에 사는 2년 동안 아랫집으로부터 인터폰 받은 건 4번이다. 이사오자마자 주말에 한 번,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 유치원에 안 가면서 점점 취침시간이 늦어진 어느 밤에 한 번, 또 어느 주말에 두 번... 인터폰 받은 횟수는 많지 않은데 사는 내내 아랫집 인터폰 환청이 들렸다. '인터폰 올 것 같아~!'



 

첫째 4살, 둘째 2살에 그 전 집에 이사를 갔다. 막 돌이 된 둘째가 아장아장 막 걸음마를 뗄 떼였다. 2년 사이에 이놈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첫째랑 비슷한 체격이 됐다. 이제 둘은 친구가 돼서 놀이도, 싸움도 함께 한다. 둘이 잘 노니깐 요새처럼 유치원에 가지 못할 때도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유치원에 안 가니 아랫집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둘이 숨바꼭질도 하고 춤도 추고 술래잡기도 하는데... 잘 노는 아이들에게 '뛰면 안 돼', '뛰면 아랫집 할머니가 싫어하셔'를 계속 말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함께 사는 공동주택에서 소음발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필수지만, 뛰어노는 게 정상인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하는 건 정상인 아닌 것 같았다.







앞에서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면서 아이들 체력을 방전시키려고 노력해보지만, 부모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 체력이 남아돈다. 이래서 부모들이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건가 싶었다. 태권도 학원에 가면 아이들이 피곤할 때까지 운동하고 집에 온다고 한다. 밥 먹고 씻으면 잠에 빠져든다는 글이었다. 글을 보면서 얼마나 웃음이 지어지던지...ㅋㅋ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에 너무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아직 태권도 학원에 보낼 나이는 아니라서 아직은 상상만 해본다. '태권도 학원에 보내면 괜찮아질까?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 괜찮을까?' 조카들을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친구들이랑 노느라고 밖에 나가고 집에서도 자기 방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려면 우리 둘째가 앞으로도 8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그런 시점을 기다린다는 게 약간 슬퍼졌다. 친구와 가까워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건, 부모와 스킨십하고 아웅다웅하는 지금의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우리 아이들보다 2살씩 많은 형제를 키우는 친한 언니에게 물어봤다. "언니 애들이 크니깐 좀 덜 뛰어?", "아니~ 점점 더 뛰어~".  하루는 초등학생 형제를 키우는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봤다. 코로나로 애들이 집에 있는데 뛰지 말라는 소리치다가 미추어버리겠어서 애들 데리고 밖에 나왔다는 글이었다. '지금이 지나가면 좀 좋아지겠지~'라는 희망보다 '뛰지 말라'는 소리를 달고 살게 될 암울한 미래가 그려졌다.









아랫집에서 인터폰 온 것은 4번이지만, 첫 인터폰 이후 사는 내내 인터폰 환청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마 공동주택에 사는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리라.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마음껏 뛰어놀아'라고 하고 싶다. 땀이 흠뻑 나게 뛰어놀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개운하게 씻고 노곤노곤하게 잠드는 밤들을 보내고 싶다.



우리 딸이 아토피 끼가 있다. 친정은 주택이라 아이들이 친정에만 가면 땀이 나도록 뛴다. 그러면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얼굴에 혈색이 돌고 씻고 나면 얼굴이 반짝반짝한다. 신기하게도 친정만 다녀오면 첫째의 피부가 좋아진다. '뛰어놀면서 혈액순환이 되는 게 아토피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타운하우스로의 이사를 감행하게 됐다. 처음에는 내 욕심에...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기 싫고 나 편하자고 이사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가족들은 지금 집에 만족하는데 나만 프로불만러인 건 아닐까?'라는 마음속 갈등도 있었다. 교통은 아무래도 더 불편해질 테고 남편 직장까지 더 멀어질 텐데..


그렇지만 클수록 더 뛴다는 친한 언니의 말, 뛰지 말라는 소리치다가 미추어버릴 것 같아서 밖에 나왔다는 친구의 인스타그램, 뛰어놀면 혈색이 좋아지고 아토피가 들어가는 딸을 보면서 결심을 했다. 2년 뒤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니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 졌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서 신나는 게 더 클지, 내 무릎  나가는 게 더 클지... 아이들이 다른 주택 아이들과 서로 골목 친구 되어 술래잡기하는 시간이 더 소중할지, 우리 부부의 늘어난 출퇴근 시간이 더 소중할지... 아직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서 교수님과 상담을 했다. 교수님은 교환학생은 별로라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교환학생 대신 대학원을 택했다. 그때 못 간 교환학생 미련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어느 선택이나 일리가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선택에 앞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지혜를 구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삶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만의 가치에 따라 선택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남의 말만 들어서도 안 된다.



주택에 살아보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결혼과 함께 시작됐었다. 교환학생 미련이 계속 남는 걸 보면서 주택 로망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 같아서 결혼 8년 차에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이 선택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삶을 선물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미련은 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물해 줄 것은 확실하다.


2년 간의 타운하우스 실험 중 맞는 두 번째 아침~ 설레며 시작해본다.^^








오늘 아침 마당.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니 새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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