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창업기 2
스튜디오 506 부부의 창업기, 두 번째 이야기
절벽 끝 또 다른 낭떠러지
퇴사 전 저희 두 사람은 사진, 영상, 글을 통해 컨텐츠를 만드는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프리랜서 역시 같은 작업의 연속이었죠. 그 맘쯤 고민 하나가 습격했어요.
‘지금의 작업 방식, 결과물은 직장인이었을 때와 같은 싸이클 아닌가? 이러려면 왜 퇴사한 거지?’
그렇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의해 컨텐츠를 생산하는 프로세스는 더이상 저희 두 사람에게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일’ 자체가 고민이 되었던 나날이 퇴사로 이어졌을 때에는, 온전히 우리 두 사람이 기획하고 창작한 컨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열망으로 가득했었죠. 거기에, 우리가 만들어낸 컨텐츠가 미약하나마 동시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 한 스푼. 더불어, 우리가 만들어낸 컨텐츠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의미가 되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한 스푼. 그래서, 그 누구보다 우리 두 사람에게 보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희망까지 실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누군가가 제안한 컨텐츠를 대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죠. 적어도 ‘이건 아니다’ 싶은 일은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말 그대로 곳간에 쌀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지속 가능한가에 관한 고민이 서둘러 찾아온 것이죠.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방황이 반드시 퇴사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물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머리로 막연히 아는 것과, 직접 체감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낙담할 수만은 없죠. 자, 이제부터는 새롭게 펼쳐진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 즉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드는 여정을 떠나야 하죠. 자칫하다가는 애써 찾은 하고 싶은 일이 다시 해야만 하는 일로 변모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으니 무척 신중해야 할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여정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서 퇴사하신 분들, 혹은 퇴사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 모두 이 거대한 난관 앞에서 우물쭈물한 적 있으시겠죠. ‘도대체 직장 때려치우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언제까지나 프리랜서로 버틸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저희 두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이 적용됐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는 ‘선택과 집중’이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할 것.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거칠 시행착오, 실패할 시 감당해야 할 후폭풍 모두 ‘선택’에 포함시켰죠. 대신, 누군가가 주는 일을 찾아 헤맬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우리가 일할 판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집중’의 자리에 채워 넣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제각기 가진 능력과 좋아하는 분야를 점검했어요. 제대로 된 작업실도, 변변한 사무실도 없던 그때. 우리는 매일 만나 머리를 맞대고 기획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 따라가 보자고 말이죠. 결론은...... 창업이더군요.
포부는 거창했지만, 창업 아이템을 찾는 건 쉽지 않았어요. 기적처럼 찾아낸다 해도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지독히도 치밀한 계획은 필수. 소정의 자본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죠. 대학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고작 3~4년 차인 저희에게는 자본이라는 안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자본이 크게 들지 않는 컨텐츠를 찾아야 했어요. 게다가 프리랜서의 불안정성을 타파하고자 창업을 꿈꿨으니 당연히 지속 가능한 일이어야겠죠.
-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 그러려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
- 그러나 우리에게 의미와 보람을 주는 일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다시 찾는 것도 불사하자
창업을 준비하며 저희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들이었습니다. 곳간에 쌓이는 쌀을 보며 일할 게 아니라, 오래오래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만 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여정은, 우리가 선택한 일이 ‘지속 가능한’ 영역임을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여겼습니다.
현실은 한 박자 느리고, 결혼은 한 박자 빠르게
그렇게 하루하루 프리랜서로서의 과중한 업무와, 창업을 위한 준비를 겸하는 날들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이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컨텐츠라는 확신이 짙어졌고, 사진과 영상과 글이라는 장르로 표현 범위를 좁혀갔습니다. 청년창업 지원 시스템을 찾아보며 숱한 사업계획서를 써 내려갔습니다. 뭐 하나 딱 떨어지게 해결되는 건 없었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을 건너며 서로의 어깨에 기댄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사업자 등록 절차를 마치고 한강을 거닐던 하루가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흩어집니다. 무심코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우리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생각했더랬죠.
사건은 늘 '그러던 어느 날'로 시작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에게 느닷없는 전환점이 하나 더 찾아왔습니다.
“우리 결혼할래?”
아주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청혼을 건넨 마르코 덕분이었죠. 나의 미래가 너에게 속해도 좋다는 사람 앞에서 ‘무늬만 프리랜서지 껍질을 까보면 백수나 다를 바 없는 두 사람이 결혼을?’이라고 생각한 제가 차가운 걸까요? 그때 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마르코에 의하면 대수롭지 않게 ‘그럴까?’ 하고 화답했다는군요.
창업을 준비하다 졸지에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 썬데이와 마르코. 아직 명확한 창업 컨텐츠도 찾지 못한 채 사업자 등록부터 서두른 두 청년. 일정한 수입도 없이 결혼부터 하겠다는 대책 없는 저 두 사람이 저희 부부의 과거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기만 합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건물이 세워지고, 그사이 계절은 바뀌고, 현실은 매번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던 날들이었습니다. 마치 게임처럼, 문제 하나를 클리어하면 버전 업한 다음 스테이지가 펼쳐지는 식이었죠. 비록 현실은 한 박자 느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행복만큼은 반드시 두 손으로 직접 찾기를 바랐던 과거의 우리는 이 게임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다만 분명한 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꾸리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러려면 우리에 의미가 되고 보람을 주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었구요. 따라서 서두르기보다는 천천히 전진하고자 했던 과거의 우리였습니다.
지지부진했던 두 사람의 창업기는 결혼을 계기로 마침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자그마한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어요. '결혼식'이 아닌 '결혼' 그 자체에 마음을 모으며 창업 아이템까지 획득한 부부의 이야기! 다음 이 시간에 마저 들려드릴게요.
그때까지,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