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과학이 세상을 벗겼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중국이나 인도, 메소포타미아가 아니었다.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였다. 기원전 6세기 인류 최초의 불순한 사고와 사상이 그곳에서 태동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물질의 근본은 무엇일까? 그곳 사람들은 이전에 없던 질문과 의문을 던졌다. 일부 답도 찾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질병은 신이나 악마가 만든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심지어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생각했다.
동시대의 중국이 아니라 왜 이오니아였을까? 탈레스, 히포크라테스, 데모크리토스, 피타고라스의 철학(혹은 과학)은 왜 인도나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이오니아에서 꽃을 피웠을까? 이오니아는 섬나라였다. 중앙집권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중앙권력의 부재(不在)는 자유로운 사상이 꽃피울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들은 “신이 아니라 자연과 물리적 힘의 결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루었다. 혼돈(Chaos)의 세상에서 질서(Cosmos)를 발견했다.
기원전 이오니아, 2017년 대한민국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17세기 네덜란드가 이오니아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30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환경은 비슷했다.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 국가로는 드물게 왕이나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공화국이었다. 자유로운 철학과 사고를 갈망하는 당대의 철학자, 수학자, 예술가가 네덜란드로 모여들고 그곳에서 태어났다. 스피노자, 데카르트, 존 로크, 렘브란트 등이 주인공이다.
20세기의 이오니아는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전 세계 철학자, 사상가, 과학자가 모여들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지만,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완성했다. 과학이 꽃피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2012년 12월 박근혜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5년 전 이명박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7년 11월, 박근혜는 감옥에 있고, 이명박은 감옥과 가까워지고 있다. 10년의 세월이었다.
이 기간 한국에서 합법과 합리성과 이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불법과 협잡이 판을 쳤다. 자유로운 사상과 생각은 불순한 사고로 치부됐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모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으며, 감시와 사찰을 일삼고, 테러에 가까운 댓글 공격을 퍼부었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은 ‘적’으로 간주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그 폐해와 흔적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이 순간, 사람들은 1년 전 광장에서 외쳤던 구호를 여전히 마음속으로 되뇌는 중이다. “이게 나라냐.” 2017년을 지나 2018년이 이렇게 가고 있다.
과학적 사고가 무너진 야만의 시대
늦었다. 2009년 4월에 출간한 책이다. 이듬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고(이 지인은 꽤 여러 명에게 이 책을 돌렸다) 더듬더듬 읽었다. 이제야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대통령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야만의 시대를 극복하고 합리성과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는 일찌감치 이런 사태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한 챕터, 한 페이지, 한 문장마다 우리 사회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살풍경이 전개되는지 예견한 일종의 묵시록이다. 경고는 예리하고 적확(的確)하다.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물리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인과 대통령이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자못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눈만 뜨면 정치인들과 대통령의 어이없는 주장들을 묵묵히 들어왔다. (…) 우리가 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고 하더라도 ‘가장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이 사회에서 체화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야만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책이 나온 2009년은 혼란의 시기였고, 절망의 시기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으로 갈등은 극에 달했다.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절망의 그림자가 한국 사회를 덮기 시작했다.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듬해 천안함이 침몰했다. 과학도 함께 사라졌다. 이성적인 판단과 토론이 사라졌다. 박근혜가 취임한 2013년부터 촛불의 힘으로 탄핵할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당시 위정자와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었을 리 없다. 읽었다고 해도 변할 것은 없었다. 저자가 말했듯 이 책은 과학지식이나 과학적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강조할 뿐이다. 그것은 책 한두 권 공부했다고 익힐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교양이자 문화이며 정서로 안착했을 때 과학성은 빛을 발한다.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와 17세기 네덜란드, 20세기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과학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5가지
저자는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로 ‘과학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다섯 가지(과학의 아름다움을 떠받치는 다섯 가지)’를 제시해 설명한다. 일관성(consistency), 보편성(universality), 필연성(inevitability), 단순성(simplicity), 미세조정의 부재(no fine-tuning)가 그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다섯 가지 중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처럼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니다. ‘일관성’ 있게 사익을 추구했고, 머리가 ‘단순한’ 측근들과 권력을 나눠 갖는 데만 몰두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근대 과학의 초석을 놓으며 교회와 대립해온 이래 과학자들은 종교와 미신과 야만으로부터 이성과 과학적 진실을 수호해왔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에게도 아직 척결해야 할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은 남아 있는 듯하다. 내가 쓰는 글들이 여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저자의 이런 바람과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과학적 사고의 부재와 불능이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대통령에게(동시에 시민들에게) 왜 과학적 사고가 필수인지를 설파한다. 부패한 정치인을 검증하기 어려운 이유를 과학적 이론과 실험으로 입증한다. 2007년부터 불거진 이명박의 BBK 사건을 엔트로피 이론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인 ‘1인 1표’를 진화론과 우주론으로 설명한다.
지금의 적폐 청산이 중요한 이유는 낡고 부패한 세력의 청산으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무너진 시스템과 합리성, 과학적 사고를 다시 정착시키는 일이다. 야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과학이 무너진 그 시절 읽었던 책을, 과학을 세우려는 지금 다시 들춰낸 이유다.
뱀꼬리[蛇足] 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책에서 강조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상당 부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이 완성되어야 과학도 발전할 수 있다. 연구소에 박정희 동상 세운다고(실제 세워진 곳이 있다), 국립묘지에 가서 그 시절 과학자 참배한다고(과학계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이 가운데 이걸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게 아니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