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현대 물리학 입문 <김상욱의 양자공부>
“우주의 존재는 원자와 빈 공간뿐, 그 외의 모든 것은 의견에 불과하다(데모크리토스).”
기원전 450년경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미 알았다. 세계의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졌으며, 나머지는 텅 빈 공간뿐이라는 사실을. 고대 원자론의 태동이자 초기 유물론의 완성이었다. 이후 2,500년 간 인류 과학의 역사는 어쩌면 이 이론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모두 의견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폼 나게 말하지 못한다. 리처드 파인만은 달랐다. 인류 멸망의 순간을 눈앞에 뒀다고 가정하자. 과학자인 당신(그렇다고 치자)과 아이들 몇 명만 살아남았다. 당신이 생존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 문명을 되살려야 할 그 아이들에게 딱 한 문장만 남겨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쓸 것인가? 파인만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All things are made of atoms).” 원자의 중요성을 이렇게 폼 나게 말한 과학자는 드물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해야 한다.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양자 역학이다. 이쯤 되면 양자 역학이 궁금해질 법도 한데.” 김상욱 교수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파인만만큼 폼 나는 표현은 아니지만, 원자의 중요성을, 원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양자 역학을 이렇게 쉽게 말한 과학자는 드물다. 양자 역학이 궁금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사에 남을 논쟁과 회의는 많았다. 하지만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 만큼 치열하고, 현대 물리학의 정수를 다룬 회의는 없었다. 솔베이 회의는 그해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이어졌다. 얼마나 중요하고 무게감 있는 회의였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의 인물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만 무려 17명에 달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퀴리 부인, 막스 플랑크,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파울리, 막스 보른 등 당대는 물론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이 총출동했다. 도대체 그해 솔베이 회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셋째 날부터 본 게임(어떤 사람은 전쟁이라고 표현한다)이 시작됐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발표가 있었다. 그들은 자연의 불연속성, 불확정성 원리, 확률 해석 등을 통해 양자 역학이 더 이상 수정이 필요 없는 완성된 이론이라고 선언했다.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다섯째 날 양자 역학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닐스 보어가 발표를 사직했다. 그동안 침묵하던 아인슈타인이 드디어 반론을 제기했다. ‘솔베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양자 역학의 핵심인 불확정성 원리를 공격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등에 따르면 원자 속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젠슈타인은 정확한 측정은 불가능하고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양자 역학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하고, 기존 상식과 직관을 깨면서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전자가 입자면서 파동처럼 움직인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가 신을 거론하면 끝난 게임이다. 아인슈타인은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제시하며 양자 역학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보어를 비롯한 양자 역학자들은 오류를 찾아냈다.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모든 공격을 다 막아 냈다. 솔베이 전쟁은 양자 역학의 승리로 끝났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모든 것은 텅 비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바로 양자 역학이다. 하지만 양자 역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파인만의 말을 다시 인용해야겠다. 그는 양자 역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자의 세계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원자는 어디에든 있다. 이 글이 실린 ‘월간 토마토’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월간 토마토 10월호를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누고, 또 나누고, 이렇게 대략 27번 정도를 나누면 원자 하나의 크기에 도달한다. 원자 크기를 대략 10-10m(0.0000000001m)라고 하지만, 그나마 기준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핵은 원자 반지름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주위로 전자가 돌고 있다.
가장 작고 단순한 원자는 수소다. 원자핵과 전자가 각각 하나다. 수소의 원자핵이 농구공이라면 전자는 대략 10km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다. 대전을 예로 들면 대전시청에 농구공이 있으면 계룡산 기슭인 수통골 입구쯤에서 전자 하나가 홀로 외로이 날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전자는 너무 작아 크기가 거의 없다. 나머지는 텅 비었다. 다시 말해 대전시만 한 공간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몸도 텅 비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다른 모든 물질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욕심을 갖지 마시라. 모두 비어 있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미시세계, 뉴턴 역학 vs 양자역학
조금 어려워도 더 들어가 보자.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양자 역학은 원자를 설명한다. 결국 양자 역학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실제로 그렇다.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과학적인 운동 법칙을 제시했고, 뉴턴은 땅과 하늘의 운동 법칙을 일치시켰으며, 이것을 수학적 공식으로 정리했다. 모든 운동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원자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운동 법칙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양자 역학이다.
전자는 입자다. 전자는 입자니까 두 개의 구멍으로 전자를 던지면 하나의 구멍만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실험을 해보니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했다. 입자이면서도 마치 물결이나 목소리와 같은 파동처럼 행동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관측하면 하나의 구멍만 통과하고(입자처럼 행동하고), 관측하지 않으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다(파동처럼 행동한다).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다. 보어가 이론적으로 제시했고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수학적으로 계산했다. 양자 역학의 수학적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 이들은 물리적 해석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양자 역학에 관한 이들의 해석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 책을 읽는다고 양자 역학을 이해하진 못한다.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양자 역학은 어렵다. 이 글을 읽으며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간혹 양자 역학을 한 번에 술술 이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론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정신 병원에 가야 한다. 대게는 후자다.”
한 번에 술술 이해하지 못했으니 이론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정신 병원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여름 이 책을 읽었다. 일종의 ‘납량특집’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공포와 서늘함 대신 무지와 부끄러움으로 몸을 떨었다. 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도 불이 켜지면 공포가 사라지는 법이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워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이해하고 깨우쳐서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것 자체가 나에겐 양자 도약(Quantum Jump)이다.
그렇게 지난여름 양자 역학이 내게로 왔다. 조금 덜 외로웠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