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코스모스>를 다시 꺼내든 이유 l 과학단상
얼마 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핑계는 있다. 이번 한가위에는 보름달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소원도 빌지 못했다. 물론 한가위에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코스모스>를 다시 펴든 행위 사이에는 어떤 합리적 상관관계도 없다. 책 뒤에는 2015년 6월 1일 시작해 6월 28일 완독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조금씩 <코스모스>를 읽었다. 어떤 날은 30페이지를 훌쩍 넘겼고, 또 어떤 날은 10페이지도 채 읽지 못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 개 있다. 또 각각의 은하에는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별의 수는 1,000억 ×1,000억 개가 있다. 무한대라고 보면 된다. 지구는 그중에 하나다. 현재까지 생명체가 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행성은 지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책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특별한 행운을 생각하는 것보다 우주가 생명으로 그득그득 넘쳐 난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내기 위한 탐험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탐험은 비장하지만, 한편으로 시적이다. 40년 전에 발사된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는 지금도 태양계 너머를 향해 비행 중이다.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않을 이 두 대의 우주 탐사선에는 지구와 인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구리에 금박을 입힌 지름 30cm 크기의 ‘골든 레코드’는 언젠가 조우할지 모를 외계 문명에 보내는 지구인의 인사다. 레코드에는 음악 27곡,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안녕하세요”라는 우리말 인사도 담겨 있다), 지구와 생명을 표현한 소리 19개, 지구와 인류 문명을 보여 주는 사진 118장이 담겨 있다.
레코드 라벨의 문구는 ‘지구의 소리들(Sounds of Earth)’이다. 그리고 골든 레코드는 보름달을 닮았다. 골든 레코드의 예상 수명은 10억 년이라고 한다. 보이저호가 파괴되고 심지어 인류가 멸망해도 ‘지구의 소리’를 담은 레코드는 우주를 떠도는 ‘여행자(Voyager)’로 남게 될 것이다. 명멸하는 수많은 별을 지켜보며, 자신을 발견하게 될 누군가를 기다리며. 고독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코스모스>를 읽는 동안 우주의 존재 방식은 어쩌면 고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가 터무니없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였다. 심지어 고향으로 가는 행위와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의 뿌리는 같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했다.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잠시 지구라 불리는 세계에 몸을 담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감히 그 기나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든 상상도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책이 있게 마련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런 책 한 권 옆에 두고 지내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내가 다시 <코스모스>를 펴든 또 다른 이유다. 참 지난해 말 보이저 호는 마침내 태양계를 벗어났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