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인격 엄마
태윤이 김에 싼 밥을 아기새처럼 받아먹는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일 때마다 양쪽 볼살이 함께 실룩인다. 사랑스럽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의 참뜻을 이해해 간다. 당장이라도 볼이 찌부되도록 뽀뽀해주고 싶지만, 모처럼 밥에 집중한 아이의 흐름을 깰 수 없어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한 입, 두 입 세입... 그러다 결국 진심 가득 담긴 한 마디를 외치고야 말았다.
"넌 정~말 사랑스러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야."
평소라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을 태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했다.
"나 보석 아니야. 엄마한테 자주 혼나잖아. 그래서 보석이 될 수 없어."
한껏 혼나고도 금세 달려와 장난을 치고, 노래를 부르던 태윤이었다. 내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벽을 인간으로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나에게 혼난 기억이 가시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진짜 보석도 커다란 바위나 깊은 땅속에 감춰져 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한참을 두드려 찾아야 한대. 태윤이가 엄마에게 혼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네가 보석이 아닌 건 아니야."
궤변이었다. 엄마에게 혼나는 걸 당연하게 여기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마치 보석을 위해서라면 암석 따위는 실컷 두들겨 맞아도 된다는 식의 말을 해버렸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면..."
진땀 나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윤은 김에 싼 밥을 또 하나 입에 날름 집어넣었다.
엄하게 혼내가며 키웠다.
태윤을 위하는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오롯이 태윤만을 위한 훈육이었냐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태윤의 행동을 통제했고, 주변의 비난이 두려워 예의 없이 구는 모습을 조금도 견디지 못했다.
밥을 안 먹을 때도 간식을 많이 먹을 때도,
아침에 늦장을 부려도 밤늦도록 잠을 안 자도.
인사를 건네는 낯선 어른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않아도,
어쩌다 한 번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곧장 안기지 않아도.
과연 나의 보석은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던 것일까.
깊은 땅속에서 채굴한 원석은 세공사의 정교한 손놀림에 의해 귀한 보석으로, 다시 목걸이와 반지로 탄생을 거듭한다. 보석은 사랑의 표현이고, 이룬 것에 대한 보람이며, 존재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제아무리 단단한 보석일지라도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면 흠집은 남기 마련이다. 깊은 상처가 남지 않도록 내내 아끼고 돌봐 주어야 한다.
나의 보석, 올해 다섯 살이 된 태윤에게도 부딪히고 상처받을 일은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 때문일 수도, 경험 때문일 수도, 둘 다 때문 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부모에게서 생기는 생채기만은 없도록 지켜주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무참하도록 잔인한 일인지 겪어 보았으므로. 이제라도 나의 보석을 더 많이 아끼고 돌봐주고 싶다.
나의 보석이, 자신의 반짝거림을 모른 채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