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밖으로 이동하라
회사 생활에 착한 아이는 필요없다.
최근 육아를 위해 읽고 있는 책인, 김경희 교수의 "틀 밖에서 놀게하라"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아이를 '착한 아이'로 키우면, 아이의 창의력이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조금만 산만하면 병원에서 ADHD로 판별해 어렸을 때부터 불필요한 약 처방이 이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통제 편의성을 위해서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무분별한 ADHD 판정으로 수많은 아이들의 창의력이 사라져갔다고 한다.
23개월인 내 딸 다현이는 그림을 그릴 때 선이 분명하고 색감이 강렬하다. 스케치북을 주면 선을 주저없이 쭉쭉 그려 나간다. 고슴도치 아빠인 나는, 아이의 그런 과감한 표현력이 좋다. 아이가 음식을 뱉거나, 책을 찢을 때도 애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데 반해, 나는 도리어 칭찬을 한다. 아이를 어떤 규제나 틀 안에서 자란 '착한 아이'가 되질 않길 바래서다.
지금 다니는 교회로 옮겼을 때, 유아부 전도사님은 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편분이 어쩜 저렇게 착하게 생겼냐? 너무 좋겠어요"
아내는, 전도사님 앞에서는 "아, 네네" 했지만, 속으로는 니가 함께 살아봐라 라고 했다 한다. 답답해 죽는다면서.
회사에서 성공하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자기가 맡은 일을 분명히 해내고, 성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상을 요청하고, 업무 바운더리가 분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한다. 괜한 착한 아이 처럼 다 받아줬다간 나중에 속이 터진다.
지금의 파트장인 김수석님의 얘기에 따르면 대부분 착한 아이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살아남았다고 한다. (전래동화 스타일의 결론)
우리는 왜 누군가의 인정에 그다지도 목마른가. 왜 시키는 일은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일을 받아 왔나. 그리고선 뒤통수 맞고 나중에 홀로 쓸쓸히 술잔을 기울이는가. 이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의 클리셰. 착한 사람이 결국 손해본다는 만고의 진리.
인정 따위 필요없다. 착한 아이보다 또라이가 낫다.
P팀장은 늘 말하곤 했다. 니 일 내 일이 회사에 어디있냐? 남들이 하기 싫다면 내가 하는 거지.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인정받고 살아남는다. 그렇지?
그의 말에 난 늘 맞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는, 진급 누락에 홀로 쓸쓸히 술잔을 기울이다 건강을 상하고 배신감에 밤 잠을 설치는 일 뿐. 그리고선 나 혼자만 사람들을 미워하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닫아 버린다.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을까.
그건 바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안일한 태도와 고생한 만큼 그 노고를 알아주겠지 하는 소극적인 마음과 성과에 대해 적극적인 어필은 좀 부끄러운 일이라는 선비같은 마인드의 결과였다.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껄.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반격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