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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따도 Mar 14. 2019

땔감이 되지 말자

에피소드#1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당신이 임원이 되기 위해, 내가 땔감이 되지는 않겠다. 메일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선 P가 나에게 가했던 12가지 잘못들을 나열했다. 메일을 쓰면서 놀라운 것은 12가지 기억들이 시간순으로 세밀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순식간에 작성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마치 그 때의 나로 돌아간 듯, 감정이 출렁였던 것. 내가 바보같았지, 그동안 왜 아무 말도 않고 내내 참았을까. 그는 묵묵히 일한다고 인정을 해주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잘 사는 사람, 배경이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에게 껌뻑 죽는 그런 유형의 사람에 가까웠다. 나는 당시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니 자책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2013년도에 난 교육 기획 업무를 하고 있었다. 모회사에 교육, 컨설팅을 제공하고 3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내부 신입사원 교육을 설계했다. 그 업무들이 일단락 되자 마자 P는 내게 사업계획 업무를 말 그대로 강제로 꾸겨 넣었다. 난 설마 이 일이 내 메인 업무가 될까 싶은 우려에, 교육 업무도 소홀히 하지 않고 밤 늦게까지 두 가지 업무를 수행했다.


- 뭐하러 고생해? 교육 업무는 미스타리에게 다 넘겨.

- 아닙니다. 잠시 사업계획하다가 제 업무로 다시 돌아와야죠.


하루는 미스타리가 P의 강요에 내 업무를 도와주다 밤 9시 경에 도망쳤다. 난 그 업무를 새벽 2시에 마무리 짓는다. 여기까지라도 도와준 게 어디야, 고마워하며. 내가 이렇게 보살이다.


하지만, 사업계획 업무가 감당할 수 없게 많아져 결국은 차년도에 교육 업무는 다 넘길 수 밖에 없었다.

#1. 2013년 내 생일 날. 나는 외부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이 끝날 무렵, 밍키에게 생일 케잌 사진과 함께 톡이 왔다. 팀에서 생일 케잌을 준비했는데 주인공이 없으니 교육 마치고 와달라고 했다. 난 모처럼 외부 교육덕에 금요일 4시 퇴근이라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는데, 축하해주는 팀원들이 고마워 약속을 미루고 회사로 왔다. 회사로 돌아오자 "왜 왔어?" P의 한마디. 그곳에 케잌은 없었다. 씨발, 낚시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팀 인원이 교육중이어도 회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기왕 왔으니 바로 집에 가기 뭐해서 일 하고 있으니까 P가 말한다. "밥 사줄께!" 이런 상황에선 거절도 어렵다. 친구들에게 '저녁 먹고 보자, 밤 늦게 우리 집으로 와'라고 톡을 보내고 그의 초대에 응한다. P는 "잠깐만 일 좀 끝내고." 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놈의 일은 여덟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끝날 줄을 모른다. 사무실엔 그와 나 뿐이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어? 어쩌지 약속이 생겼네. 다음에 살께." 그는 황급히 사무실을 떠난다.


내가 자취하던 분당 옥탁방에 온다던 시골 친구들도 내일 어차피 또 만나니깐 오지 않겠다고 연락이 온다.


- 내일 오지 말고 지금 와. 온다고 했잖아. 늦었어도 와. 멀지도 않아. 늦으면 자고 가. 술은 내가 살께.


난 서운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땡깡을 부렸다.


사무실을 나서는데 마침 비가 왔고, 난 뭔가 비참한 마음에 그냥 그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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