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 Jul 02. 2023

11. ADHD 약물치료와 함께 상담을 시도했다


약물 치료에 상담을 함께 하면,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엔 너무 바빠 보였다. 나는 그 병원의 심리상담사와 하는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은 8만 원. 조금은 무리긴 했지만, 그 정도면 합리적이다 싶었다.      

병원의 심리상담사는 똑 부러진 인상이었다. 상담을 계속하는 건 첫 번째 상담을 끝내고 결정하겠다고 예약할 때 말했었지만, 상담사는 상담 전에 다음 일정부터 잡기를 원했다. 상담사는 계속 상담하기로 결정된 것처럼 간격부터 물었다. 나는 상담이 끝내고 결정하고 싶었지만, 상담 전부터 상담사의 기분을 망치는 것이 두려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2주에 한 번이요."      


내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상담사는 내 손으로 직접 종이에 그 날짜를 쓰라고 시켰다. 쓰면서도 이걸 내가 왜 지금 써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그 말 역시 하지 못했다. 기분이 싸했지만, 어차피 상담은 시작된 거였다. 어쨌든 상담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는 치료 초기라 ADHD 약 효과가 강렬했고, 더 나은 시간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에 들떠있었다. 시작은 좀 싸했어도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나는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상담자는 힘들었던 얘기들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아버지가 폭력적이었다고 했는데, 어떤 식이었는지? 성희롱 사건 피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나는 아버지 얘기를 할 때는 좀 웃었다. 성희롱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좀 떨렸다. 사실 처음 보는 상담자에게 자세히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때는 그 생각은 안 났다.

상담사는 내 말을 듣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그저 억압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담사에 의하면 성희롱은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      


"아주 위험한 상태세요.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해요."      


내가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싶지 않고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고 하자, 상담사는 내 몸짓과 표정을 분석하며 주장했다.

 

"목소리가 떨리시는 걸 보니 아직 성희롱 사건에 대해 극복이 안 되셨어요.

웃으시는 걸 보니 감정을 억압하고 계시네요."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괜찮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내가 얼마나 억압적인 사람인지 보여줄 증거일 뿐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과는 절대로 싫어”라는 말이었지만, 나는 감히 그 말은 못 했다. 내가 치료가 필요 없다고 할수록 나는 치료에 저항하는 위험한 상태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사람을 신뢰하기 힘들어서 그런 작업은 하고 싶지 않다고 돌려 말했다. 상담사는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 관계가 구축된 다음에 진행해야 안전하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내게 트라우마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치료받지 않겠다는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굴었다.      


"판단 능력이 좀 많이 떨어지세요. 다음 회기에는 검사부터 할게요. 자료를 드릴 테니까 댁에서 해오세요."


상담자는 내가 판단 능력이 떨어져서 내 의사를 완전히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상담자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됐다는 게 두려웠다. 성희롱 피해, 아버지의 죽음과 몇 년간의 경제적 어려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껏 말을 해도, 그것은 내 어리석음과 위험함의 증거로 활용될 것 같았다. 상담실에서 웃는 것도, 눈빛이 흔들리는 것도, 손이 떨리는 것도, 모두 다.


상담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마침내 한 시간이 지나자, 상담사는 내게 상담실 문을 열어주었다. 상담사는 진료비를 납부하는 카운터까지 따라 나왔고, 2주 뒤에 보자고 상냥하게 말했다. 상담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와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저 상담이 안 좋았을 뿐, 상담은 사람을 살리는 힘도 있다고 믿는다.

나는 상담에서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다만 상담은 때로 위험할 수도 있고, 상담받다가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

그럴 때 자신을 의심하거나 책망하게 되기도 한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기를, 불운을 가지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