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세상 모든 직업과 직장의 가치가 오로지 '돈'으로 환원되었다. 그 일이 얼마나 자아실현과 밀접한지,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그 일의 사회적 가치 덕분에 나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얻는지 같은 건 그야말로 아무도 관심 없는 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세후 얼마 버는지, 그래서 서초 아파트 살 수 있는지, 그래서 마이바흐 몰고 에르메스 매고 모수 서울에 가서 주말 디너 먹을 수 있는지가 되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가 잘 살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오직 나 자신의 마음만 믿고 살기에는 어딘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마치 부모에게 확인받듯이 내가 '잘살고' 있는지, 이대로 살아도 좋은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평생 이어진다. 그럴 때, 가장 손쉬운 건 타인과 비교하여 내가 더 나은지, 안심할 만한지, 남부럽지 않게, 남들만큼 사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삶을 비교하여 따지고 확인하는 일에서 자아실현, 효능감, 자존감, 자율성, 총체적 만족감, 사랑과 우정의 충분함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고민하는 일은 거추장스럽다. 섬세하게 하루의 질을 판별하고, 내 꿈과 현실 간의 간극을 가늠해보고, 내 삶이 정말 내게 어울리는지를 고민해보는 건 어딘지 거추장스럽고 불명확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 대신 돈이라는 아주 명약관화하고 한 눈에 보이는 것으로 계량하고 서열을 나누는 게 명료하고 편하다. 그렇게 가시적이고 '쉬운 쪽'으로 삶을 판단하다 보면, 이제는 그 바깥에 있는 가치들은 모조리 볼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남는 건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일밖엔 남지 않는다. 어떤 게 좋은 삶인지, 무엇이 내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삶인지, 내게 가능하고도 최선의 삶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냥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만 부러워한다. 30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비싼 차를 몰고, 비싼 레스토랑과 호텔에 가고, 어쨌든 남들보다 더많은 돈을 통장에 박아 넣는 것만이 가장 부럽고 우월한 삶이다. 그밖의 모든 삶은 그냥 '정신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삶에는 돈 말고 다른 가치들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나에게는 많은 돈을 주는 직장보다 자율성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하다. 나는 매일 밤까지 일하며 지금보다 2배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아이랑 배드민턴 칠 수 있는 일상이 더 중요하다. 나는 내게 돈 벌어다주는 일들에 주말까지 사로잡혀 자산을 불리는 일보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 더 읽을 수 있는 주말 밤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내게는 나의 취향과는 아무 상관 없이 더 많은 돈을 벌어다주는 일보다는, 나의 취향과 최대한의 접점을 유지하며 일하는 게 중요하다.
돈은 중요하고, 겉으로 보이는 여러 가치들도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중요한 게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 나아가 어떤 사람은 자기가 돈 말고 무엇을 중요시여기는지 알아야만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다. 100억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종류의 사람도 있다. 나는 정확하게 나의 삶을 살고 싶고,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쉽게 계량할 수 없는 삶의 요소들이라 믿는다. 거기에는 가령 계절을 느끼는 마음, 저녁의 바람을 이해하는 감각, 사랑하는 사람과 거니는 밤길의 가로등 불빛에 몰두하는 시선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