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만이 비겁하고 한심해졌던 이유 (feat 슬램덩크)
비겁하고 한심하게 짝이 없어진 정대만은 농구부 주장 채치수에게 뺨을 맞는다. 정대만은 교내외 불량배 패거리를 끌고 농구부 체육관에 쳐들어왔다. 자기에게 반항한 후배 송태섭을 혼내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 그는 그렇게라도 체육관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진심조차 인정하지 못한 채, 불량배가 되어 농구부원들을 폭행하면서 낄낄거린다.
그러다 그는 강백호 친구들의 등장으로 다시 두들겨 맞고,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옛 친구였던 채치수에게까지 빰을 맞는 처지가 된다. 강백호 친구 중 하나인 양호열은 정대만을 두들겨 팬 이후 "두 번 다시는 이 농구부 체육관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대만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입 밖에 꺼내지 못했지만, 농구로 돌아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여덟 남짓의 이 소년은 자신의 전부였던 농구로 돌아가고 싶은 그 마음을 차마 인정할 수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저열한 인간이 되기로 한다. 항상 자신이 최고 스타였던 그 농구의 세계에서 부상을 당한 이후로, 이전만큼의 활약이 어려워졌다고 느껴버리자, 용기를 잃었던 것이다. 믿음과 용기를 잃은 소년이란, 실상 덜 자란 미성년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농구를 증오하고 조롱하며 자기의 진실로부터 회피하기를 택한다.
인간 내면의 '용기' 같은 것은 실체도 없고,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것들에 비해 하등 중요할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하는 데 용기씩이나 필요할까? 타고난 재능, 금수저 부모의 지원, 여러 환경이나 조건상 그냥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기의 진심을 글 한 편으로 써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의 진실을 마주하고 자기의 꿈으로 나아가는 데 그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용기'가 없다면, 누구든 비겁하고 한심한 인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도무지 목적이랄 걸 이해할 수 없는 피 터지는 폭행 사태 끝에, 정대만의 눈 앞에는 안한수 감독이 나타난다. 오래 전 정대만은 중학생 시절, 한 시합을 포기하려다가 구경을 온 안현수 감독으로부터 말 한마디를 듣게 된다. 경기 종료를 앞두고 포기하려는 그에게 안감독은 "끝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 포기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거야."라고 말하고, 정대만은 그 말에 힘 입어 경기 종료 직전에 득점하여 시합을 역전한다. 그 기억으로, 그는 안감독이 있는 고등학교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농구를 포기한 이후, 찢어진 헝겊처럼 되어버린 그 앞에 안감독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는 그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거기까지 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아니, 그렇게 믿을수록 그는 농구에서 더 멀어졌다. 이제는 늦었어, 다시 예전처럼 빛날 수는 없어, 라고 속으로 되뇌일수록 그는 이제는 그런 마음조차 잊어버릴 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 만화가 아닌 현실에서라면, 그렇게 영원히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을 것이다. 자기의 진실한 꿈이든,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이든, 차마 돌아가고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해 팽창하는 우주처럼 영원히 멀어지는 일들이 삶에는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그러나 정대만은 너무 늦게 전에 돌아온다. 자기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했던 그 한 존재를 마주하자, 그는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내가 내 안의 빛을 잃고 혼자 끝도 없는 어둠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을 때, 그렇게 삶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을 때, 내가 가장 믿고 싶은 한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다. 인간은 인간이 살려낸다. 인간은 다른 한 인간으로 인해 진실을 되찾는다. 인간에게는 빛이 되는 다른 한 인간이 있다. 인생에는 내가 고개를 들어서 그 누군가를 바라봐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