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에 대한 연민(스포일러)
최근 극장가를 휩쓴 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과 <체인소 맨 : 레제편>의 중심 테마가 모두 '악역에 대한 연민'이라는 점이다. 두 작품 모두 악역의 행위는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이다.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하고, 주인공 동료들을 죽이고, 인간 사회에서 보자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들'이 캐릭터화 되어 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 악역들을 연민하게 만든다.
캐릭터를 연민하게 만드는 데는 원래 늘 일본 만화가 천재적인 데가 있었다. '악당에게도 사정이 있다.'라는 것은 거의 모든 일본 만화에 한번쯤은 등장하는 에피소드라고도 할 법하다. 이번 귀칼과 체인소맨에도 같은 테마가 메인이다. 보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악당을 연민하게 되어 버린다. 중요한 건 관객이 그들을 용서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그 순간은 그들이 '마음을 돌릴 때' 이루어진다. 귀칼에서 혈귀 중 하나인 아카자는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를 죽인다. 자신은 지금까지 약한 자들을 증오하며 죽여왔지만, 사실은 나약했던 자기 자신을 가장 죽이고 싶었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지만, 불현듯 떠올리게 된 기억에서, 그는 자신이 나약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기억을 조우하자마자 자기 자신을 죽인다. 사람들은 여기서 그를 용서하고 연민한다. 그가 반성하여 행동했기 때문이다.
체인소맨에서도 다르지 않다. 레제는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주인공도 죽이려고 한 '악당'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잘못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떠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학살과 죽임이라는 임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용서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온 과거 전체를 등지고, 다른 존재가 되어, 주인공의 손을 잡고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 때, 관객의 용서는 이루어진다.
그렇게 보면, 이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의 '용서'에 대한 본능에 기대어 있다. 인간은 잘못한 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은 본능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잘못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잘못하면 용서받고 싶다. 물론, 대가는 치러야 한다. 두 악역은 모두 죽는다. 그렇지만 관객은 그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이 대가를 치렀기에, 그들이 그 대가 앞에서 스스로 돌아섰기에, 그들을 용서한다. 사실, 우리도 언제나 부모에게 용서를 바랐고, 자신에게 용서받길 원했고, 또 언젠가 세상에 용서받길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의 소소한 공통점은 더 있다. 화려한 작화도 그렇고, 테마로 봤을 때는 '단순한 남자 길들이기'가 또 다른 메인 테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귀칼에서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자 아카자는, 자신보다 강한 사부가 거둬 길들여주고, 그 딸에 의해 '다정함과 따뜻함'에 길들여진다. 체인소멘은 그야말로 만화의 주내용 자체가 단순한 청소년 덴지 길들이기다. 이런 점은 '예쁜 여자에게 길들여지고 싶다.'라는 남성들의 꽤나 보편적인 이상을 담아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일종의 남자판 백마 탄 공주 비슷한 것이다. 광의의 남자 청소년들이 이 작품들을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재밌게 봤지만, 역시 소년만화는 소년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저씨로서 아주 깊은 공감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엔 이러한 순애는 약간 먼 나라이야기다. 특히 귀칼에서 아카자에게 코유키가 "어서와요, 여보."라고 할 때, 청년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엄청 들렸는데 약간 난감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다들 결혼하고 싶은 건가, 어쩌면 이 시대에도 사랑의 결정판은 '결혼'인가, 다들 '여보'가 필요한가, 그런 실없는 생각도 했다. 물론, 결혼하면 좋다. 레제와 평생 살려면 역시 결혼이다. 그래, 다들 어서 "너, 유부남이 되어라."
* 사진은 각 #귀멸의칼날무한성편 #체인소맨레제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