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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Jun 22. 2020

32 여자의 뇌, 남자의 뇌. 첫 번째 이야기

사냥을 나간 남자, 동굴에 남은 여자

예전에 한 오락 프로그램에 ‘남녀탐구생활’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당시에 재미있게 보았는데, 한 번은 모르는 동성과 같이 있을 때의 남녀 차이를 방영했다. 여자들의 경우 만남 초기에 잠시의 탐색 시간을 가진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십년지기 친구처럼 친해진 반면, 남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어색함을 유지하는 장면을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로 여자와 남자는 생각, 행동, 관심사, 대인관계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면 단지 선입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인류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왔다. 이 기간 동안 남녀의 뇌는 각자의 상황에 알맞은 생존 방식을 습득해 나갔다. 인류 발달의 역사 중 99% 이상을 수렵 생활이 차지한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사냥으로 식량을 구하는 뇌 작동 방식이 수백만 년을 거쳐 진화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렵시대 사냥은 주로 남성들의 몫이었다. 


자,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숲 속에 사냥을 나간 남성이라고 상상해보자. 


‘내가 이번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가족은 며칠을 굶을지 모른다. 사냥의 성공 여부에 가족 모두의 목숨이 달려있다. 사냥을 하다가 다쳐서도 안된다. 언제 어디서 달려들지 모르는 맹수에게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발목을 접질려도 맹수의 밥이 될 수도 있다. 손가락에 상처가 나도 곪아서 죽을 수 있다. 나 스스로 내 몸을 지켜야 한다. 오늘은 사냥에 꼭 성공해서 빨리 가족이 있는 동굴로 돌아가고 싶다...'


야생에서는 연습이 없다. 실수가 생사를 가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냥과 독자적 생존 능력이 중요했다. 사냥감을 쫓아가거나 맹수를 피해 도망가기 위해서는 주변의 숲이나 나무들의 위치와 공간상의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공간 지각 능력도 중요했다. 또한 수풀에 숨어있는 사냥감이나 맹수를 발견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도 필요했다. 


여기서 남성들의 경쟁적인 대인관계의 진화적 근원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냥 능력이나 생존 능력이 뛰어나면 나의 지위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넓은 사냥터를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생겨난 남성의 공간지각 능력이 여성보다 조금은 앞선 점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습성은 남성들의 산만함의 진화론적 원인을 엿보게 해 준다. 실제로 ADHD 증상을 가지고 있는 남아의 비율은 여아보다 훨씬 높다. ADHD는 부주의하고 산만함이 특징인데, 이는 주위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남성 뇌의 특징에서 나온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달랐다. 이번에는 당신이 동굴에 있는 여성이라고 상상해보자. 


‘나의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 더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아마 내년 봄에는 아기가 태어나겠지. 지금의 상황에서 배우자가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는 사냥을 나가서 없다. 며칠 후에 돌아올지 모른다. 옆에 함께 의지할 다른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동굴 속의 여성은 열 달의 임신 기간 동안 배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위험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때에 옆의 동료는 많은 힘이 되었다. 이러한 진화적 필요성은 여성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남성에 비해 더 비중 있게 자리 잡도록 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후손을 남겨야 한다. 결국 자손이 많은 사람이 승자인 것이다. 다시 동굴 속의 여성이라고 상상해보자. 


‘내 옆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가 있다. 지금 배우자는 사냥을 떠나고 없다. 나 혼자서 어린 자식을 돌봐야 한다. 밖에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만약 맹수가 나타난다면 나 혼자만 도망갈 수 없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어린 아기를 지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동료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식이 본인과 육아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것을 옆에서 챙겨줘야 하는 아기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는 동료와 협동하여 아기를 서로 돌보고 챙겨주는 방식이 자신과 아기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아이 아빠가 사냥에 성공해서 돌아올 수 있기 위해서는 배우자 선택에 좀 더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이로 인해 남성들은 사냥에 더 신중해졌고, 더불어 오늘날 몰래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거나 난폭 운전을 하는 것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행동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상승시킨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열 달의 임신기간이 없다.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는 후손을 남기는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남성은 단지 여성을 만나기만 하면 되었다. 혼외정사를 통해서도 남성에게는 이득이 있었다. 이런 상황은 협동보다는 다른 남성보다 서열상의 위쪽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대인 관계가 우선시 되게 만들었다. 결국 여성과 남성은 각자의 상황에 알맞은 전략을 선택하면서 차츰 뇌는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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