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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검 Sep 14. 2022

검도 왜 하세요?

검도하면 어디에 좋을까?

검도 왜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개인적 이유로 도장을 찾는다..

대한검도회 중앙연수원에서 사범 강습을 진행하셨던 선생님은 예전에는 검도관마다 호신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관원을 모집했는데 어느새 지금은 모두 다이어트로 간판이 바뀌었다며 검도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셨다. 어떤 관장님은 처음 도장을 개관했던 90년대 초, 드라마 모래시계의 검도하는 '백재희'를 따라 도장 등록이 물밀듯 이어지던 황금기가 있었다고 그리워하셨다. 마룻바닥에 죽도 꽂을 빨간색 대야(?)만 놓고도 도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검도장을 찾지만 8단 신승기 선생이 검도 학회지(2005년 21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안전하고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검도의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검도, 합기도 태권도 유도의 네 가지 무도 종목 가운데 여성이 수련하기 가장 좋은 무도로 검도를 꼽은 비율이 49.8%에 달했고 스트레스 해소나,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수련할 수 있는 무도로서의 선호도에서도 검도가 각각 다른 무도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다만, 체력증진에 도움이 되는 무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태권도(37.2%)가 검도(19.9%) 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아마도 실제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정적인 검도의 이미지가 이와 같은 설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다른 무도종목들에 비해 검도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정신집중'에 관한 부분인데 응답자의 78.3%가 정신집중에 검도가 우수하다고 답해 다른 무도종목들에 비해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반면, 다소 비싸 보이는 호구 등 수련장비 때문에 응답자의 85.4%가 검도 수련이 타 무도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해 보면 일반 대중들은 검도에 대해 여성들도 쉽게 수련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지 않고 정신집중에 도움이 되는 '정'적이면서도 장비 구입 등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무도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실제로 만나본 많은 분들도 검도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운동하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동시에 묵상 등을 통해 정신수양이나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정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말씀하신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검도보다 더 훌륭한 다이어트 전문 운동들이 있을 것이고, 호신술에도 MMA나 주짓수 같은 계열의 실전 무술이 더 적합하겠지만 결국 '격렬한 것 같으면서도, 정적인 무도' , 거칠면서도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검도의 다소 모순되는 이미지가 많은 분들을 도장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검도와 다이어트


많은 사람들이 검도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많이 질문하고 궁금해하는 부분이 검도의 다이어트 효과다.

인터넷에 보면 검도의 다이어트 효과에 관한 글이 넘쳐난다. 30분에 300 kcal를 사용한다고도 하고, 20분에 140 kcal를 사용한다고도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와 글들이 대다수지만 이미숙(2014)은 '하루 1200칼로리 다이어트'에서 유도와 검도가 300kcal를 소모하는데 약 60분이 소모된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시간당 600kcal 보다 낮고 수영이나 달리기보다도 칼로리 소모 효과가 낮지만 등산이나 배드민턴, 스키와 유사한 수준의 칼로리 소모량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칼로리 소모량은 개인의 체중이나 운동 강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운동이 칼로리 소모량이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줄넘기라도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들의 줄넘기와 한강변을 산책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줄넘기가 같을 수는 없다.

비록 문헌에서 검도가 농구나 배드민턴과 비슷한 칼로리를 소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검도는 기본적으로 개인 간 경기이고 상대와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경쟁하는 컨택트 스포츠(contact sports)인 만큼 농구나 배드민턴과 비교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팀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공이 없을 때 잠깐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1:1로 육체적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겨루다 보니 사람들에 따라서는 심리적 긴장감이나 육체적 스트레스가 훨씬 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검도장에서의 일반적인 운동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수업이 시작되면 간단한 체조를 하고 죽도를 휘두르는 기본 연습을 한다. 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도복만 입고 기본기를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죽도를 천천히 앞뒤로 휘두르는 후리기부터 시작해서 몸의 긴장을 풀고 워밍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죽도로 머리를 치는 동작을 구분동작으로 나누어 3 동작, 2 동작 1 동작을 하게 된다.

중간중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으로 제자리에서 앞뒤로 뛰며 머리를 치는 빠른 머리 치기를 약 100개 정도 해야 비로소 기본적인 몸풀기가 끝난다.


도장 사범님의 재량에 따라 30~50개를 하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100개를 채운다. 초보시절에는 30개도 제대로 못해 헉헉거렸지만, 옆에서 수년, 수십 년을 수련한 중년의 사범님들은 호흡조차 가빠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몸풀기가 끝나면 선생님이나 사범님의 지시에 따라 몇 가지 기본 공격 패턴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우리 선생님은 일보 머리 치기, 2 보머 리치기, 찌름, 좌우머리, 연격 등을 덧붙여 쉴새없이 반복하셨다. 칠순의 노구에도 30~40대의 제자들과 함께,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매일매일 반복하셨다. 그렇게 기본연습을 마치면 운동시작 후 30분 만에 누구든 이미 반녹초가 된다. 검도호구는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물도 마시고, 장비를 정비한 후 호구를 착용하면 본격적으로 기술연습과 대련이 시작된다. 10kg짜리 호구(세계검도연맹에서는 호구라는 말대신 '검도구'로 용어를 통일했으나 편의상 호구라고 통칭한다)를 갖춰입고 연격을 시작으로 각종 기본 기술을 연습하면 초보자들에게는 헛구역질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연속공격과 퇴격연습까지 쉴새없이 하면 그제서야 처음 운동을 시작한지 45분 정도 지난다. 호구를 쓰고 고작 15분 더 했을 뿐이다. 마라톤을 했건, 이종격투기를 했건, 장거리 수영을 했건 상관없다. 도장에 찾아왔던 모든 사람들은 처음에 모두 힘들어 했다. 검도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기본기가 익숙해 지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번민의 세월이고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요즘에야 조금씩 기본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연구하고 있지만 기본은 여전히 힘들고 지루하다.


기본적인 기술연습을 끝내면 장비를 점검한 후 본격적인 대련연습에 들어간다. 오랜 시간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도장의 고참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초보들에게는 이 역시 쉽지 않다.

도장 선배들은 쉬려고 해도 쉬지 못하게 계속 공격해 온다. 머리도 때리고 손목도 때리고 허리도 때리고 가끔은 몸받음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한번에 하나씩 공격해 오는게 아니라 머리, 손목, 허리를 연속으로 때리다가 마지막에 몸으로 받아버리기도 한다. 앞에 있었는데 어느새 오른쪽 왼쪽에서 나타나더니 금새 머리를 치고 뒤로 사라져 버린다.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에 귀청이 얼얼한데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연세 지긋하신 노 사범님들은 젊은 관장님이나 지도사범님과 다른 칼을 내신다. 움직임도 많지 않고, 공격횟수도 많지 않다. 그런데 상대를 힘들게 한다.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막아도 보고, 도망쳐 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숨을 할딱 거리고야 만다. 날아오는 칼은 많지 않은데 이상하게 나를 힘들게 했다. 별로 움직인것 같지 않은데, 숨은 턱밑까지 찼다. 무릎에 손을 짚고 고개를 떨구면 그제서야 선생님이 ‘그만’이라고 말씀하신다. 솔직히 그 말이 듣고 싶어 아까부터 힘든 내색을 했는데 모른 척 하시더니 그제서야 놓아 주신다.

그렇게 연습이 끝나고 제자리에 앉아 호면을 벗으면 '묵상' 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번잡스러웠던 도장은 일순 적막에 쌓이고 잠시 숨을 가다듬으면 그제서야 호흡이 조금 돌아온다. 호구를 정리하고 터덜터덜 탈의실로 들어가 정신을 차리고 더듬더듬 샤워꼭지를 틀어본다.

차가운 물줄기를 틀어놓고 벽에 한쪽 손을 기대보면 주마등처럼 조금 전의 일들이 지나간다.

불나방처럼 뛰어들 때 큰 머리 한방 가볍게 날려 주시던 선생님과 사범님들의 도복 실루엣이 떠오른다. 그래도 운동을 끝낸 후의 상쾌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검도의 완성은 샤워'라는 말은 진리다. 젖은 머리를 툴툴 털며 도장문을 나서면 그래도 뭔가 이룬 것 같이 뿌듯하다. 모를 일이다.


‘난 검도를 끝내야 하루가 끝난 것 같아’ 어느 선배님의 말씀은 진리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의 시간 동안 이런 과정이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이어진다. 세월이 지나고 단수가 올라가며서 전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중간에 시합이나 승단심사라도 있으면 연습강도는 더 늘어난다.


검도로 살을 빼지 못했다면 어떤 운동으로도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운동별 칼로리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20년 넘게 운동을 했음에도 지금도 도장에 다녀온 다음날이면 통상 1kg의 감량을 경험한다. 과다한 수분 배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도장에서 돌아온 날은 가족들에게 평소에 듣기 힘든 말을 들을 수 있다.

'얼굴이 반쪽이네' ...

문제는 운동이 끝나고 보상심리가 작동한다는 거다.


힘든 운동일 수록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게 없다.

많은 분들이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보상심리로 치맥을 비롯한 각종 야식을 즐긴다. 이것만 절제해도 살이 정말 쏙쏙 빠질텐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도 2010년도에 실제로 검도이외에 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식단 조절만으로 10kg 넘게 단기간에 감량한 적도 있었다. 솔직히 검도보다 야식을 참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일부는 검도경력이 길어질 수록 호구와 몸이 일체가 되는 현상을 경험한다고 주장(?)하면서 검도의 운동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하는데, 검도자체에 잘못은 없다. 이런 문제를 경험하는 검도인들 대부분은 땀흘려 운동한 이후 보상심리로 야식과 음주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도만 그런게 아니다. 매일아침 뛰어다니는 조기축구회 아저씨들도 호나우도의 몸매를 꿈꾸지만 별반 다를게 없다.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모래시계의 태수가 우석에게 했던 말 처럼 "그 다음이 중요" 한 거다.   

다이어트 효과를 크게 보고 싶다면 아침운동을 추천한다. 운동 끝났다고 아침부터 잔치 벌일 일은 없을 테니까.  

건강에 좋은 검도

몸을 쓰고 움직이는 모든 운동은 건강에 좋다. 하루에 한 두시간씩 걷기만 해도 긍정적인 신체변화를 경험할 수 있지만, 검도에서는 몇가지 더욱 특징적인 건강개선 효과가 있다.


똑바로 선채로 발을 구르며 뛰어다니는 운동이다 보니 검도는 대부분의 중력운동이나 육상종목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년 이후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골다공증은 검도수련을 통해 발을 구르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개선됐다는 여성 검도인의 인터뷰 기사가 종종 대한검도회보에 실리기도 한다. 2018년 11월에 방영된 KBS의 생로병사에서는 골다공증에 좋은 운동으로 검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검도에서는 바른자세와 함께 도약력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신체의 근육 중 가장 큰 대퇴근이 발달하고 종아리 근육도 다른 운동에 비해 많이 발달하게 된다. 특히 종아리 근육의 크기는 장수의 지표로서 중요한데 동경대 노인의학연구소에서 2012년 부터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2011명을 대상으로 핑거링 테스트(자신의 양손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 자신의 종아리 굵기를 측정하는 법)를 추적관찰한 결과 종아리 두께가 핑거링보다 헐렁한 노인들의 사망율이 핑거링보다 두꺼운 노인들의 사망율 보다 6.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종아리가 두꺼울 수록 노인건강이 좋아진다는 의미인데, 주로 양발의 앞꿈치로 움직이는 검도는 종아리 근육을 발달시키는데 더 없이 좋은 운동이다. 꾸준한 검도수련이 노인들의 근 감소를 방지하고 생존에 필요한 적절한 종아리 근육과 대퇴근육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성분들 중에는 종아리 근육이 두드러지는 것이 싫어서 검도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자사범님들의 경험담으로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검도에는 종아리 근육을 강화시키는 순간적인 도약 외에도 지속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동작이 많아 외관상 크게 문제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검도가 유산소 운동인지, 무산소 운동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들 처럼 칼로 무 자르듯 유산소, 무산소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굳이 구분한다면 인터벌 트레이닝이나 HIIT (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빠뜨리지 않고 기본연습으로 진행하는 연격만 하더라도 약 15~20초 동안 한 두번의 호흡에 의지해 빠르고 강하게 연속적으로 상대의 머리를 치는데 이와같은 연격이나 공격연습이야 말로 대표적인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IT)의 예라고 볼 수 있다. HIIT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약 20초의 운동과 40초의 휴식으로 구성된 운동법으로 운동 후에 초과산소섭취(EPOC) 현상이 일어나 운동 이후에도 최장 48시간까지 초과 칼로리를 소비하게 만드는 운동을 말한다. 머리치기, 손목치기, 허리치기를 비롯해 연속공격연습 등 대부분의 검도 기본연습이 모두 HIIT 와 크게 다르지 않다.


키도 컸어요.


믿기 힘들겠지만 검도를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키가 커지기도 한다. 2009년 잠시 광화문에 위치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파견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뵙고 자세를 교정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미 검도를 13년 정도 꾸준히 하고 있었던 터라 이런저런 나쁜 습관이 몸에 많이 배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던 기본 자세 중 하나가 허리를 곧게 세우는 것이였다. 허리에 힘을 주고, 심지어는 머리를 치는 기본동작을 하면서도 ‘허리’ 라고 구령을 넣으며 허리에 신경을 쓰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그렇게 일 년 정도 자세를 교정한 후에 직장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약 2센티 이상 키가 자라 있었다. 신체측정을 해주던 간호사 분도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가끔 자세교정을 하면 키가 커진다고 말씀 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키가 새롭게 성장하는게 아니고, 곧게 척추를 펴면서 숨어있던 키가 나온다는 말씀이였다. 예전에 수영을 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말씀하시던 분들이 있었는데, 검도에서도 가능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무도나 격투기 중에서 상체를 앞으로 굽이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종목은 검도가 유일한 것 같다. 당연히 허리를 곧게 세워야 하고 이때 숨어있는 1센티의 키가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다양한 교류기회

어떤 취미든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업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은 생의 깊이를 더하고, 취미는 삶의 범위를 넓힌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검도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고 교류하는 취미도 흔치 않다. 호구를 쓰고 운동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보니 남녀노소가 어울려 한 곳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체급제한도 없다보니 덩치가 작건 크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장마다 아들, 딸과 함께 운동하는 아빠들이 있고, 나이가 지긋한 노검사도 혈기왕성한 20대 친구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큰 검도의 즐거움 중 하나가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며 ‘늙지 않는 것’이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전 세계의 모든 검도인들이 동일한 규칙으로 운동하고, 승단심사를 거치며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다 보니 검도인구가 많고 역사가 오래된 일본을 제외하면 5단 정도만 되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고단자로 인정받으며 검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의 교류가 벌써 십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선생님은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동경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모였고, 여행길에 만난 핀란드, 네덜란드, 에스토니아의 검우들도 지난 2018년 서울 세계대회에서 만남을 가지며 검도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검도에서 만난 인연은 개인적인 업무와 연구에도 도움을 주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만났던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의 일본인 교수는 연습이 끝나고 가진 술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문제에 대해 다양한 연구주제를 던져 주었고, 핀란드에서 만난 친구는 핀란드의 복지제도와 저출산 문제에 관해 보고서와 책에서는 얻지 못할 속내 가득한 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했다.


도장을 벗어날 용기만 있다면 호구가방 하나 들쳐매고 전국 어느 도장이든 찾아가 배움을 청할 수 있고, 비슷한 검력과 직업을 가진 검우들과 합동연무를 통해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검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맞는다. 생각이 많으면 진다.


자녀를 두고 있는 주변 분들에게 검도를 시키면 집중력이 길러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묵상을 하는 검도의 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검도를 수련하면서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길러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모양이다. 집중력이 길러지고 그로 인해서 학습수행능력이 향상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건 한 가지 있다.


검도 수련중에 딴생각을 하면 얻어 맞는다는 것.

칼을 잡고 상대방을 대하고 있으면 그야 말로 '대화' 가 시작된다. 칠듯말듯 거리를 조여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죽도를 툭툭 건드려 보며 상대의 칼날이 내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쳐내기도 한다. 그러다 틈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타격부위를 공격해야 하는데 잠시도 한 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거나 빈틈을 보이면 어김없이 얻어 맞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검도를 '칼날 위의 참선'이라고 부르셨다. 정신을 놓는 순간 칼날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수영도 해보고, 오랜기간 테니스 레슨도 받아봤지만 검도처럼 정신적인 틈을 주지 않는 운동은 드물었던것 같다. 도무지 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눈을 파는 찰라의 순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선승의 등짝위로 내리치는 '죽비'처럼 죽도가 머리위로 작렬했다. 아마, 대부분의 무도나 격기 종목이 검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상에서 머릿속을 괴롭히는 복잡한 생각과 마음은 도장에서 칼을 겨누는 사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국내와 일본의 학계1에서는 검도수련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거나 검도단수가 높아질 수록 불안(anxiety)에 대한 적응성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약 한시간 남짓한 검도수련시간 중 특히, 대련시간에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초보시절보다는 수련경험이 축적되고 단수가 올라갈 수록 상대와의 수싸움, 공세와 공방에 대한 몰입도가 더 크고 자신의 한 칼, 한 칼에 대한 집중력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8단 선생님들의 시합영상을 보면 한 칼은 커녕 한 발자국(족장)을 내기 위해 십여분 이상 공방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검도, 재미있다.


다이어트가 어떻고, 집중력이 어떻고 해도 무엇보다 검도는 재미있다.


아무리 좋은 점이 많다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많은 분들이 검도에 빠져 그렇게 오랜기간 수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모두 작은 막대기 하나 들고 형제나 친구들과 칼싸움을 했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상대를 때리는 건 생각도 못하고 그저 허공에 막대기를 휘두르며 부딪힐 뿐인데도 어느 동네에서나 개구장이들의 놀이에 칼싸움이 빠진 적은 없다. 검도를 개구장이들의 칼싸움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묘하게도 검도는 꽤 재미있다. 보호장비를 쓰고 직접 맞아가며 승부를 겨룰 수 있다보니 결정적 한방이 아쉽기만(?) 하던 어릴적 칼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원초적 재미를 느끼게 된다.


힘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체격이 크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키가 아무리 작고 힘이 없어도 상대를 이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고등학교 동문 검도대회에 단체전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용산고 동문검도팀의 상대방 선수는 키도 나보다 훨씬 작고 연세도 환갑을 넘어 보이셨다. 심지어 장애때문인지 다리를 살짝 절면서 입장을 하시길래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시합을 시작하자 마자 거침없이 머리를 치고 나갔다. 그런데 왠걸? 순식간에 허리 두 판으로 경기에 지고 말았다. 치고 나가는 머리를 받아서 허리를 치는 상대방에게 두 판을 연거푸 내 준 것이다.


복싱이나 MMA는 둘째치고 아무리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유도라고 하더라도 체급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에게 기술을 써서 한 판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검도에서는 체급이나 힘에 상관없이 누구나 대등하게 경기를 치루고 승부를 겨룰 수 있다. 그래서 검도대회에는 연령별로는 나뉘어도 체급별로는 나뉘지 않는다. 심지어 대회의 성격에 따라서는 모든 연령의 성인들이 하나의 우승컵을 놓고 시합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체중이나 체격,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일어나기도 하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검도에서는 세매(攻め)라고 하는 공세의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 칼을 내기 전에  상대의 마음을 흔들고 기세를 꺽어 공격을 성공시키는 것을 중요시 한다. 강하게 한 발 들어가거나 기합을 지르는 것, 상대가 겨눈 칼의 중심을 흐트러지게 하는 등 상대의 공격할 기세를 꺽고 나의 공세를 유지할때 세매라고 표현한다. 검도 시합은 결국 '공세'로 시작해서 공세로 끝난다고 할 수 있고, 고단자로 갈 수록 공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우연히 발 뒷꿈치를 건드려서 골을 만들거나 홀인원을 기록하는 축구, 골프와 달리 검도경기에서는 공세로 상대를 무너 뜨리고 공격을 성공시켜야 한판이 된다. 머리를 치듯이 공세하고 상대가 방어하기 위해서 손을 올릴때 손목을 예리하게 격자하는 것이 공세에 의한 손목이다.  끊임없이 공세해서 상대가 두려워하고, 놀라고, 의심하고, 유혹에 빠져 이를 못 견디고 뛰쳐 나올때 상대의 머리나 손목, 허리를 격자하는 기술들이야 말로 최고의 한 판으로 인정받는다.


선수들의 시합에서는 우연한 타격이 점수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고단자 시합에서는 세매가 없는 타격, 만들어 지지 않은 타격은 절대 점수가 되지 않는다. 승단심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련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타격보다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공세에 초점이 맞춰진다. 세매를 배우다 보면 칼을 내기 전에 이미 상대방이 무너졌는지 알 수 있다. 공세로 상대가 무너진 다음에 그제서야 칼을 내는 것이다. 칼을 내기 전에 이미 상대가 나의 공세에 무너지도록 하는 법을 배우면 검도의 재미는 또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세를 알면 검도가 정말 재밌어진다. 칠순 노인이 젊은 장정들을 이기는 비결이 공세에 있다' 고 하셨다.  자기보다 크고, 강하고 재빠른 친구들을 이기는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는게 검도다.  



일년만 참아 보세요.


아무리 많은 검도의 장점을 이야기 해도 많은 초보자들이 석달을 버티지 못하고 도장등록을 포기한다. 주변의 선후배나 지인들이 검도를 시작한다고 하면 도복이나 죽도를 선물했는데, 승단했다는 이야기는 듣기가 힘들다.  검도를 시작할 때는 검도의 정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낄지 몰라도 검도를 그만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가 없다', '힘들다' '지겹다' 는 응답이 대부분이다. 본인이 처음 검도를 시작할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 정 반대의 수련이 두 세달씩 이어지면 아무리 굳은 결심으로 도장에 왔던 분들도 서서히 지쳐간다.


낯선 도장, 불편한 도복, 어색한 기존관원들의 시선도 불편한데, 익숙하지 않은 죽도를 들고 평상적이지 않은 발걸음을 연습하다 보면 한 두 시간의 수련시간만으로도 급격하게 현타가 온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관장님이나 사범님이 자세를 가르쳐 주고 몇 번 어수룩하게 죽도로 타격대를 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구석에서 선배 관원들이 호구를 쓰고 이리저리 뛰고 소리 지르며 치고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잘하는 건지도 모르고 멋있는지도 모르지만 얼마 후에는 나도 저들 틈에서 호구를 쓰고 땀 흘리겠지 하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함께 어울려 샤워하기도 어색해 도복만 대충 챙겨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새로 받은 죽도를 들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잡아본다. 미간에 힘을 주고 인상도 써 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법 그럴 듯해서 내친김에 도복도 다시 한 번 입어보고 자세를 잡아본다. '도복 끈처리를 어떻게 했더라' '여기가 앞인가?' 이런 고민 속에 내일 관장님께 다시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대강 복장을 챙겨 입고 오늘 배운 3동작 머리치기를 잊기 전에 복습하려고 죽도를 들어본다.

'쿵!'

순간 집천장을 때리고 만다.

형광등이라도 깨지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살며시 죽도를 벽에 기대어 둔다.

보통의 검도 첫날은 이렇게 지나간다.

2일 차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조금 더 어색한 발동작을 하나 더 배웠고, 조금 더 힘든 동작을 조금 더 힘들게 관장님이나 사범님이 시킨 대로 따라 한 것 말고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짧게는 3개월 보통은 5~6개월이 지나 호구를 착용하기 전까지 타격대와 혼자 씨름해야 한다.


많은 수의 신입관원들이 이 시기에 그만둔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힘들고 지겨운 기초과정을 견뎌 내고나서 막상 호구를 주문할 때 그만두는 분들이 많다. 도장마다 붙어있는 '평생검도'가 무색하게도 '왜 평생해야 하지?' 라는 당연한 의문 때문이다.


그래서 100명이 검도를 시작하면 4단 까지 가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는 근거없는 이야기도 떠돈다.

30년 가까이 생활인으로 직장생활, 학업과 병행하며 검도를 수련해온 경험을 돌이켜 보면 도장에 가는 발걸음이 항상 가벼웠던 것 같지는 않다.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초저녁에 잠은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TV 프로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몸은 또 왜 그렇게 매번 무거우며 할 일은 왜 끝도 없이 쏟아지는지. 항상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기본기 조금만 버티고 호구만 쓰면 그렇게 재미있는데, 집 밖으로 한 걸음을 내기가 항상 어려웠다.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면서 오랜 시간 하다보니 그야말로 ‘평생검도’가 되어 버렸지만,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돌아보면 검도의 현실적인 장점들이 많지만 검도를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검도만큼은 평생해도 되겠다는 약속이나 다짐 같은 거였다. 검도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분들에게 검도말고 배울 것이 많았다. 20년 전 미국에서 만난 일본인 이노시타선생님은 신시내티에서 클리블랜드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오셔서 검도를 가르쳐 주시고 밤 10시가 되서야 다시 4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신시내티로 돌아가셨다. 성공한 의사로서 삶을 즐길만도 하지만 지금도 오하이오의 작은 학교에서 서너명의 검도인들을 모아 일주일에 두번씩 연습을 하신다. 얼마전 방문했을때 오랜 친구인 Herb가 보여줄게 있다면서 나를 이끌었다. 선생님이 항상 서 계시던 체육관 자리에 발자국 도장이 지워지지 않고 마치 화석처럼 남아있었다. 몇 안되는 초보자 수준의 검도클럽 학생들, 수련은 지난하고 지루하겠지만 그치지 않고 연습하신 것이다. 칠순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죽도를 휘두르시며 8단을 준비하고 계신다.


한국에서 만난 선생님도 평생의 수련을 가르쳐 주셨다. 직장생활을 하시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수련을 계속하셨고 일에서도 검도에서도 모두 성공하신 분 이였다. '검도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공부는 제대로 하냐?' 말씀하셨던 선생님도 있었다. 검도를 수련하면 건강이 좋아지고 재미가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런 목적들을 위해서 검도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괜찮은 운동하나를 선택해 평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해 놓고 보니 주위분들이 모두 수도승 같았고 그 분들을 따라 하다 보니 아직 갈길이 멀 뿐이다.


'검의 이법을 통한 인간형성의 길'


세계검도연맹에서는 검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검을 수련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게 검도수련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검도를 수련했다고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도마저 수련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가치를 잃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검도 왜 하냐고 물으면 장황하게 여러가지를 설명하고 결국엔 한 마디 덧붙일런지 모른다.


'아직 부족하니까'      





1)정운선, and 고영완. "검도수련과 정신건강 및 생활만족도의 관계 연구." 대한검도학회지 25.1 (2014): 35-53.
2) NIWA, Takaaki, Kuniko NAGASAWA, and Akiko KITADA. "Characteristics of Personality of the Women Members in the Kendo Club of Universities Especialy in reference to Anxiety Tendency and Stage Fright." Japanese Journal of Sport Education Studies 4.2 (1985): 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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