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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해 Aug 24. 2018

가장 사적인 카페를 찾았다

밀크티를 사랑한다면, '이너모스트(Innermost)'

서울로 올라와 초짜 에디터로 지낸 지 어느새 1년 하고 반-


맛집에서 줄 서있는 걸 싫어하고, 북적거리는 길거리와 시끄러운 술집, 다닥다닥 붙은 의자에 끼여 앉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나에게 서울 생활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마다 취미에도 없던 집순이가 되어가던 찰나,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카페 한 곳이 나를 잡아끌었다. 공릉에 위치한 카페 이너모스트(Innermost)는 당시 오픈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신상 카페였다. '분위기도 괜찮은데 아직 손 떼 묻지 않은 카페라니 더 끌린다'


ⓒ달달해

뭐든 끌리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 주 주말 비장하게 카메라를 챙겨 들고 카페에 있으면 좀이 쑤신다는 남자친구까지 대동하고 길을 나섰다.  




가장 사적인 카페, 이너모스트

'가장 사적인, 가장 안쪽의'이라는 뜻의 이너모스트, 이름에 걸맞게 카페는 정말 사적인 곳에 있었다(사적이라 쓰고 아무도 갈 것 같지 않은 곳이라고 읽는다). 지하철역을 나와 원룸촌 골목으로 들어가 전혀 카페가 있지 않을 것 같은 곳까지 걸어가 주변을 유심히 살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카페에 대한 첫인상은 미니멀. 


ㅡ작은 나무 간판과 하얀색 페인트 칠로만 멋을 낸 외관, 메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에 최소한의 가구만 배치된 걸로 봐서는 굉장히 심플한 카페라는 예감이 들었다. 


(입구에는 핑크빛 올드카 한 대가 있는데, 포토 존인 것 같은 느낌-) 나름 색다른 분위기를 기대했던 나는 미니멀스러움에 살짝 실망했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국판 카모메식당은 이런 느낌일까?

메인 공간에 들어선 첫 느낌. '아! 카모메식당!' 


카모메식당(2006)|ⓒ 다음 영화

헬싱키, 조그만 마을에서 일식당을 차린 여주인과 갖가지 사연들을 품고 식당에 들어선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요리 영화 '카모메식당'


독보적인 영상미와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으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다. 나 또한 이 영화의 감성에 푹 빠져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카모메 식당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특히나 좋아한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감성을 바로 이곳 이너모스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그 옆에 무심한 듯 귀엽게 줄 맞춰 놓은 주방기구. 오픈된 주방. 앤티크한 소품들-


 

조용히 카페를 둘러보니 곳곳에는 카모메와는 또 다른, 이너모스트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공간이 참 많았다. 


인테리어에 대해 물어보자, 주인장은 낯선 이의 질문에 조금 당황하더니 "저는 티가 너무 좋아서 영국에서 티 블렌딩을 공부해 왔어요."라는 말로 입술을 뗐다. 이어 "영국 가정집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정성을 다해 티를 대접해요. 저도 이곳에 오시는 손님들께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전달해드리고 싶어 영국 가정집 느낌으로 꾸며봤어요."라며 정성스럽게 답하고는 이내 또 수줍어했다. 


▶ 클래식이 흘러나오던 마샬 스피커 


▶ 작은 공병에 담긴 다양한 티 재료들. 사소한 것들에서도 이너모스트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그날그날 구워내는 것 같은 스콘과 마들렌. 무심한 듯 휘갈겨 쓴 Cranberry Scone이란 푯말이 묘하게 끌렸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레몬 마들렌- 마들렌 하나를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음료를 주문하기로 했다.


티의 신세계에 빠져들다
    

메뉴판에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종류의 티 메뉴가 있었다. 기본 밀크티와 이너모스트만의 시그니처 밀크티 외에도 과일이 들어간 Fruit Variation Tea, Straight Tea가 있었고 허브차와 커피 메뉴도 준비되어 있었다.


   

디저트류도 만족스러웠다. 흔히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케이크, 샐러드는 없었지만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토스트부터 가볍게 즐길만한 스콘, 마들렌까지- 티와 곁들여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구성이었다.


나의 선택은 보틀 밀크티(얼그레이)+시그니처 핑크 크림+앙버터 토스트+레몬 마들렌


  

이너모스트가 좋아진 순간. 찰칵-


손님에게 내어질 음료와 디저트 플레이팅 하나에도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있었다.

 

보틀 감성 가득한 밀크티. 아직 밀크티 입문자라 전문적인 맛 평가는 어렵지만, 평소 밀크티보다는 커피를 선호하는 나와 남자친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얼그레이 밀크티 특유의 달콤 쌉싸름한 맛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묵직하지도 않게 은은하게 전해졌다. 


  

레몬 마들렌 또한 성공적. 일단 금빛 플레이트에서부터 여심 강탈이랄까 


한 손엔 접시를, 다른 한 손으로는 저 앤티크한 포크를 들고 있으니 마치 애프터눈티를 즐기는 영국 귀부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맛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설탕 옷을 입힌 달달한 마들렌 속에 들어있는 쌉싸름한 레몬 필 조림이 일품이었다. 


남자친구가 특히 좋아한 앙버터 토스트. 식빵 위에 버터 > 말차 크림 > 팥소 순서로 경건하게 탑을 쌓고 한 입 앙- 베어 무니 별것도 아닌데 행복해졌다. 


천연 발효 식빵과 버터 중에서도 고급으로 친다는 프랑스산 고메버터, 적당히 달달한 팥소. 먹을 때마다 살찐다는 생각보다는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디저트였다. (물론 살은 찌겠지만)


하지만, 내 마음을 뺏은 주범은 따로 있었으니, 이름하여 시그니처 핑크 크림

"동네 사람들- 이 비주얼 좀 보세요!"


밀크티 위에 다소곳이 올려진 스트로베리 크림! 거품이 일단 굉장히 부드럽고 짱짱하다. 맛은 적당히 달콤하고 은은하게 딸기향이 난달까? 본격적으로 밀크티를 맛보기도 전에 이미 이 크림에서부터 반한다.


단 음료를 싫어해서 이런 크림류를 절대적으로 피하는 내가 (커피 이외에) 처음으로 대만족하며 즐겼던 음료다.


한쪽엔 이렇게 #감성_터지는 킨포크 책도 마련되어 있으니 읽어도 좋고, 나처럼 감성 사진에 이용해도 좋다.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은 우리. 


이 글을 쓰고 나니 빠른 시일 내에 또 한 번 이너모스트를 가야겠다. 아마 이때보다는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맛과 분위기만큼은 분명 실망스럽지 않을 테니까!




 
이너모스트 카페

주소: 서울 노원구 동일로 183길 12-14 (서울 노원구 공릉동 494-4)

전화: 010-6523-8012

영업: 12:00~22:00|매주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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