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의 양과 질의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현상을 보고 어떤 이는 A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이는 A를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특정 현상을 보고 어떤 이는 피상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구체적이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격차는 사실 모든 차이를 결정한다. 직업의 차이, 봉급의 차이, 풍요로움의 차이, 의사결정의 차이, 현명함의 차이 등. 생각의 격차가 태어나면서 모두 결정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후천적으로 충분히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생각의 격차가 발생하게 되는지 고찰해본다.
나는 21살에 내가 무시받는게 상당히 싫었다. 그때의 나는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란 전혀 중요한 지표가 아니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7년간 그 생각의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이제는 생물학적 나이의 우위로 어떤 것도 누를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의 차이는 생각의 지수적인 격차를 낳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생각의 격차는 어떻게 발생하는지 논의를 전개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 격차의 원인은 “깨달음 차이의 복리적 영향”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백지 상태의 두 아이 민수와 철수를 생각해보자. 민수는 어떤 계기로 A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철수는 A를 알지 못 한다. 그 이후로, 민수는 세상을 바라볼 때, A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철수는 세상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A를 느끼지 못 한다. 민수는 A를 알기 때문에, B로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제 세상을 바라볼 때, A와 B를 느낄 수 있다. 이 A, B를 가지고 또 C, D 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E, F, G, H 까지. 그리고 철수는 여전히 백지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위 예시를 기반으로, 일반화된 이론을 전개해보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엄청난 것을 의미한다. 20살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은 수십년간 그것과 관련된 것을 느끼고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주변부로 사고를 확장해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것을 깨닫지 못 했다면, 평생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주변으로 사고를 확장할 수도 없다. 즉, 하나의 깨달음의 차이는 복리로서 작용하여, 종래에 지수적인 차이를 낳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그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큰 식물이 될 것이며, 나중에 더 많은 씨앗을 만들어낼 것이다. 씨앗을 심지 못하고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씨앗을 심은 사람과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심리학을 예시로 들어보자. 심리학이라는 씨앗을 심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먼저 주변인의 몇몇 행동 동기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씨앗이 커져서 식물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나의 모든 행동, 주변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식물은, 마케팅, 경영, 진화론, 디자인 이라는 씨앗을 낳는다. 어떤 씨앗에게 물을 더 주며 키워낼지는 주인이 판단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풍요로운 식물원을 이룰 것이고, 누군가의 삭막한 사막과의 격차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씨앗, 즉 깨달음은 어떻게 얻는가? 당연하게도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동일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깨달음이 많이 생길까? 아니다. 노하우를 기반으로 속도 개선을 이룰 수는 있겠지만, 변화를 만들기엔 부족하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은 어떻게 얻는가? 책, 공부, 여행, 사랑, 우정 등 모든 것에서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책도 읽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고, 동일한 방식으로 사랑과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는 같은 장르의 책만 읽고, 같은 분야의 공부만 하고, 같은 장소로만 여행을 가고, 같은 사람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새로움의 측면에서 빈약할 것이다. 하나의 나무를 높이 세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다른 식물 없이 하나의 식물만 우뚝 서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여러 씨앗을 남기고, 여러 식물을 키우며 지반을 다지고,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더 높이 자랄 수 있기 마련이다.
결국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전에 자신이 편식하고 있진 않은지 - 인간관계, 지식, 경험 등에서 -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편식은 보통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린 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