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빼기 압박에 대하여
특정 주제를 1시간만 가르쳐야 한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다시 말해, 주어진 강의 시간 안에 모든 진도를 뺄 수 없다면, 무엇을 선택해서 가르쳐야 할까.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의 저자 파커 J. 파머는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르치기”를 강조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가르친다고 해보자. 그중 웹 개발을 배운다고 하면, 세부적으로 다룰 내용이 너무나 많다. HTML, CSS, JavaScript, 네트워크 통신, 서버 등. 최대한 빠르게 모든 내용을 다루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내용을 다루고, 이후는 알아서 학습하도록 하는 게 맞을까?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르친다는 사고를 적용해 보자. 먼저 소프트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코드를 활용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다. 웹사이트로 자신을 표현해서 친구들에게 링크를 전달해 본다거나, MBTI 사이트를 만들어 본다거나, 아이디어를 최소한의 기능으로라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문제라도 코드를 통해 해결하도록 만들면, 부분을 배웠지만 전체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요새는 AI를 활용하면 소프트웨어의 본질을 빠르게 경험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교사는 진도를 빠르게 나가야 한다고 압박을 느낀다. 무작정 빠르게 진도를 나간다고 하여 능사가 아니다. 학창 시절, 대학 시절 그런 경험이 많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가? 이것을 배워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끌려다녀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진도를 모두 빼주는 것이 강사의 책임이라고 느끼고, 충실히 이행했음은 이해하지만, 본질적으로 좋은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차에 따라 차례대로 진도를 나가면, 마지막 장까지 배우고 난 후에야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전까지는 혼란의 연속이고,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게 된다. 현실은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왜 배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끝까지 달려 나갈 사람은 심히 모범적인 학생밖에 없다.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학습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나만 배우더라도, 전체를 이해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배우더라도, 나머지는 스스로 학습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을 도출할 수 있다. 바로 핵심과 큰 그림을 짚어주고 경험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수평적으로 나열된 지식 속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방대하고, 잘 연결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교사만이 핵심을 짚어줄 수 있다. 강의도 그렇게 구성되어야 한다. 입문서도 그렇게 쓰여야 한다. 심지어 AI 교사도 이런 프롬프트 하에 동작해야 한다.
내가 코치로 활동 중인 우아한테크코스 조직은, 이런 교육을 지향한다. 10개월 과정 중, 5개월만 강의를 진행하고, 그중에서도 주에 2회, 총 3시간밖에 강의하지 않는다. 학습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며, 코치는 핵심을 짚어주고, 빠르게 경험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전통적 교육과 다르게 모든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진도 빼는 것에 혈안 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코치는 많은 강의를 할 필요가 없으니 강의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핵심만을 가르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학생으로서도 지겨운 강의를 매일 같이 듣기보다, 학습하고 싶은 것을 학습하면 되기 때문에, 스스로 학습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강의는 가뭄의 비처럼 학생들이 강의를 필요로 할 때쯤 찾아온다. 그러니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코치와 학생 모두 만족스러운 강의가 된다. 이렇게 부분을 통해 전체를 가르치는 방법의 이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지식을 알려줄 때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