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영화는 괜찮았고 꽤나 감동 받았다. 뒤늦게 찾아보니<베를린 천사의 시> 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의 작품이라고.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은 야쿠쇼 쇼지 연기까지 어울어져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짐 자무시의 <패터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둘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차분한 남성의 이야기이며 삶과 예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주인공이 견지하는 삶의 태도도 비슷하다. 반복되는 일상을 지겨움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생의 원리로 받든다.
결국 <패터슨>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퍼펙트 데이즈>가 좀더 납작하고 명료하다. 얼핏 시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영화는 보다 분명하고 즉각적으로 정서를 드러낸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노골적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훌륭한 팝넘버들이 그렇고, 흔들리는 그림자를 담은 영상이 그렇다. 여든에 가까운 노장이 '살아보니 이렇더라'라고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강변하는 영화 같았다. 좋은 영화는 이야기의 형태가 어떻든 결국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법이지만, 이 영화는 배회하는 법 없이 목적지가 곧장 '아름다움'이다.
나이 먹은 서양인이 일본문화에서 기대하는, 혹은 발견하는 게 선불교식 아름다움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미니멀리즘'으로 발현된다. <퍼펙트 데이즈>가 구현하는 아름다움은 서양인이 사랑하는 일본식 미니멀리즘이다. 공중화장실이라는 가장 더러운 곳을 수행자처럼 꼼꼼히 청소하는, 수다스럽지 않고 행동거지가 정제된 주인공 히라야마. 그의 반복된 일상에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파장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그 고요속의 미묘한 파동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다.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심드렁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영화가 주목하는 아름다움이란게 영화에서밖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도파민의 시대에 피처폰을 쓰고, 잠들기 전 문고판 고전을 읽고, 정해진 소비에 같은 식당의 음식을 먹는 삶은 우리 주변에 분명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삶이기도 하다. 히라야마가 들고다니는 카세트 테이프와 필름카메라는 이젠 힙스터들의 놀이감이 됐다. 게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읽는 화장실 청소부의 삶을 목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존재하기야 하겠지만 우리 시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남에게 관심이 없고, 히라야마 같은 삶은 관심을 끌어내지 못할테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사려깊지 못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히라야마는 빔 벤더스가 교토의 일본식 정원을 꾸미듯 자신이 푹 빠져있는 미의식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공물이니까.
히라야마처럼 하찮은 일상을 순례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도 순간 순간의 작은 욕심들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카세트 테이프를 탐내는 후배에게 알량한 마음에 차마 돈을 못 줄 수도 있고, 새로운 아침이 왔음에 감사하며 기도를 올리듯 짓는 미소도 어떤 시절엔 좀처럼 짓지 못할 수도 있다. 감독은 사랑하고 싶은 인간형을 영화속 인물로 설정해 놓은 뒤, 한정된 시간 안에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욱여넣는다. 며칠간의 행적동안 작은 갈등과 에피소드는 있지만 기나긴 삶에 분명 찾아올 회한과 후회, 위태로움 같은 건 영화의 시간엔 없다. 그저 감당할 수 있는 고난 속에서 우아하게 요동치는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면 될 뿐이다.
<패터슨>을 인상깊게 봤는지라 이 영화를 보며 내내 아쉬움이 나왔다. <패터슨>은 영화 속 대사처럼 3차원의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다. 패터슨은 시이면서 인간이면서 장소이다. 영화의 아름다움이 무한히 확장하는 건 영화의 예쁜 화면, 멋진 대사들 거기에 패터슨의 '시'가 곱해졌기 때문이다. 패터슨이 영위하는 간결한 삶은 '시'라는 목적을 위한 경로이다. 간결한 삶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러한 삶이 시를 향해 나아갈 때 더욱 숭고해진다.
<퍼펙트 데이즈>는 조금 다르다. 훌륭한 음악에다 우리의 미니멀리즘의 환상을 채워줄만한 삶의 묘사로 채워져있다. 히라야마는 딱 기대한 만큼의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지적이고 순수하다. 우리는 '빔 벤더스식' 아름다움의 밑그림에 충실한 히라야마의 직업, 일상, 대화, 표정을 볼 뿐이다. 영화는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패터슨>의 패터슨이 일상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시로 적는다면, <퍼펙트 데이즈>에선 문학은 운치를 더하는 소품에서 머문다.
이런 영화의 가장 큰 곤란함은 비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불평을 적어놓긴 했지만, 실제로 괜찮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컷 감동해놓고 마음에 남는 작은 건덕지를 굳이 건져올려 비판을 하는 게 성가시고 쪼잔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현대인이라면 선망하고 동경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니, 섣부르게 건들기도 어렵다. 이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태도에 관현 영화다. 이야기는 비판하기 쉽고 그 비판으로 다시 풍성해지는 법인데 태도는 그렇지가 않다. 설사 비판에 성공하더라도 그 순간 짜게 식어버린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라는 소리 듣기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