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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 Jul 22.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다리며 하루키의 <시드니!>

무라카미 하루키 <시드니!>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을 때의 즐거움은 세상에 대한 태도를 작가의 육성으로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탁월한 관찰력에서 나온다. 그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러한 인식에 특별히 감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에세이 속에서는 ‘나는 이게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그건 어쩌고 저째’라고 말하는 것들이 작가의 소설 속에선 배경이나 장소로 소리 없이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벽지의 재질이나 장식의 패턴이 인테리어샵에서는 눈에 확 들어오지만 집안에 발라진 것들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벽지 이전에 벽일 뿐.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 거나 벽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일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매혹되는 이유는 엄혹하고 버거운 세상을 대단히도 쿨하고 가볍게 그려내는 데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이루는 건 주인공의 대사일 때도 있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선배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탁자에 놓인 위스키나 거실에 켜둔 재즈 음반일 때도 있다. 라디오에 나오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경기 결과인 적도 있다. 무인도에 티비와 단둘이 떨어져도 절대 티비 따위는 킬 거 같지 않은 하루키 소설 속 인간들이 야구 경기 결과에는 자꾸 귀를 기울인다. 아무튼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저녁을 두부 샐러드로 먹은 사람처럼 평소보다 가볍고 개운한 기분이 든다.


하루키 에세이룰 읽다 보면 픽션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들의 기원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세이 속에 드러나는 직관적인 반응들이 소설 속 묘사의 단초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를 ‘맥주회사에서 나오는 보리차’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가. 맥주 마니아라면 보리차에서 물맛의 기원을 상상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로 하루키가 표현한 건 아니겠지만)


하루키의 올림픽 에세이 <시드니!>는 억지로 쓴 티가 역력히 나는 작품이다. 애초에 그는 올림픽 경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가 호의를 보이는 종목은 철인 3종 경기와 남녀 마라톤 정도뿐이다. 축구와 야구에 대한 글은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려는 의지 정도인 듯하다. 여자 마라톤 경기에서 일본인 금메달리스트가 나왔을 때 그는 그녀의 성취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지만 동시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국가주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단어에 은밀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가 집중하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자신’과 힘겹게 싸우는 강인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책의 첫 장은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는 아리모리 유코와 슬럼프에 빠져 올림픽 출전을 장담 못하는 이누부시 다카유키에 관한 글이었다. 책 마지막에 아리모리 유코의 인터뷰가 한번 더 나온다. 그녀는 이어진 뉴욕 마라톤에서 우승하지 못했으며 출산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던 중이다. 기록은 명백하게 하향세이며 출산은 커리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녀가 보여주는 마라톤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보낸다. 패배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다음 러닝을 준비하는 그녀의 강인한 정신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시드니!>는 아마도 매일 연재되는 방식의 에세이였을 텐데 나눠진 챕터마다 ‘올림픽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일을 의뢰한 출판사에게 보내는 항의서한 같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자신의 호텔로 돌아가 매일 글을 쓴다. 노트북을 잃어버려도 수기로 글을 쓰고 박물관에 가서 역사에 대해 공부해오기도 한다. 의무로 써 내려가는 글에도 특유의 신선한 묘사가 들어가는 걸 보면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하루키의 모습이 보인다. 경기가 재미없으면 이국의 낯선 공기를 묘사하는데 할애한다. 출장 일정 중에도 한 시간씩 조깅을 하듯, 하루키는 일과 업 그 중간 어딘가의 태도로 글을 쓴다. 마치 발목에 뻐근함을 느껴도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처럼.


종종 하루키 소설의 세계가 유약하고 말하지만 그 이면엔 진지하고 완고한 세계를 견디는 강력한 항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따위에 내던지는 쿨하고 시큰둥한 말투는 버겁고 두려운 세계에도 자신의 소명을 긍정하는 단단한 줄기에서 근원한다. 올림픽 따위엔 관심 없지만, 국가주의와 상업화엔 매우 반대하지만 그 안에 엮인 인간에 대해서는 성실히 기록하고 있다.

에세이에서의 하루키의 목소리는 하루키가 세계를 견디는 방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태도는 소설 속 주인공의 무심함 말투 속에 숨은 전사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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