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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 Aug 27. 2024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가 낭만적인 이유

낭만은 부사에서


얼마 전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정말 멋진 노래구나. 이 노래는 '낭만'이란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이 노래는 낭만 그 자체다. 조금은 촌스러운 감이 있지만 애초에 '낭만'이란 단어 자체가 촌스러운 구석이 있다.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낭만적으로 불려질 것이다.


이 노래가 왜 낭만적인가. 가수 최백호의 운치 있는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고 재즈와 트롯 사이 어딘가에 있을 듯한 멜로디 라인 때문에도 그렇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가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궂은비, 옛날식 다방, 도라지 위스키, 색소폰, 실연... 전부다 어쩐지 애달프고, 여전히 낡은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노래가 낭만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가사에 남발되는 '부사'들 때문이다. 그야말로, 나름대로, 왠지, 새삼 등등, 이 노래엔 유난히 부사가 많다.


흔히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울 때 부사를 최소화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부사만 치워도 글이 훨씬 더 유려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가사는 정반대다. 유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사에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좋은 글이 좋은 노래 가사가 될 수는 있지만 좋은 노래 가사가 멜로디 없이 헐벗었을 때 반드시 좋은 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노래 가사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없다. 음악과 더불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우선이다. 가사의 가치에 인색한 사람은 그저 운율이나 음운을 맞추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할 것이고, 가사에 쉽게 감동하는 타입이라면 가사가 주는 울림을 주목할 것이다. 어쨌든 둘 다 목표로 하는 건 감정이다. 가사를 듣고 마음이 울린다면 그건 훌륭한 가사이다.


이 노래에 가득한 부사들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다. 낭만이란 게 무엇인가. 인생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없으면 아쉬운 것들이다. 그리고 종종 그것 때문에 인생이 주춤거리기도 하고 분명한 길을 앞에 두고 맴맴 돌기도 한다. 글을 쓸 때 부사가 그렇다. 의견과 뜻을 드러내진 않지만 문장의 정서를 더한다. 가사의 구절구절마다 들어가는 부사들은 낭만이라는 모래주머니를 매단 인생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옛날식 다방에 앉은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은 노래 속 화자는 명료하고 분명한 삶에 껴들지 못한 채 주저함과 머뭇거림에 휘청이며 술집에서 인생을 곱씹을 인간형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어쩌면 낭만은, 이윽고 군더더기를 안고 사는 삶일런지. 이렇게 온갖 부사를 붙여 문장을 만들어보았지만 멜로디 없이, 조명과 적당한 무드 없이 나열하면 촌스럽고 유치한 글이 되고야 만다. 그게 바로 음악의 위대함이 아닐까. 훌륭한 글에 훌륭한 음악이 붙는 게 아니라, 훌륭한 음악에 어울리는 좋은 글의 방식이 따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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