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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08. 2024

[추모글] 굿바이, CJ 스네어

CJ 스네어의 사망을 알린 2024년 4월 7일자 '롤링 스톤'.


내가 CJ 스네어를 처음 만난 건 90년대 중반 고등학생 때였다. 록을 좋아하는 친구 집에 놀러가 멤버들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한” 끝에 발매한 파이어하우스의 메이저 데뷔작과 2, 3집(모두 카세트테이프였다)을 통째로 들으면서였는데, 에릭 마틴에 버금간 독보적인 보이스 톤에서 번져 나오던 그 따뜻한 우수는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있다. 처음엔 스네어가 키보드와 드럼 머신만으로 스케치 해 만든 결혼 축가 단골 곡 ‘Love of a Lifetime’에 빠졌지만 내 취향은 좀 더 신나는 ‘All She Wrote’와 ‘Don't Treat Me Bad’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2집의 ‘When I Look into Your Eyes’라는 록발라드로 다시 돌아와 고막을 세척 당했다. ‘파이어하우스는 멜로디를 참 잘 만드는 밴드구나.’ 그런 생각을 굳히게 만든 3집의 ‘I Live My Life for You’는 근래 드럼에 앉아 친구들과 직접 합주까지 했던 곡이다. “스네어의 훈훈한 인성과 멋진 미소는 언제나 우리의 하루를 밝게 해주었다.” 동료인 나이트 레인저의 잭 블레이즈(베이스/보컬)의 말은 CJ 스네어의 노래에도 그대로 대입됐다.     


그리고 1996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이어하우스의 앨범 ‘Good Acoustics’가 나왔다. 제목처럼 어쿠스틱 물감으로 새 노래와 기존 노래들을 색칠한 앨범으로, 나는 다른 어떤 록 밴드들의 공식 컴필레이션보다 이 모음집을 애청했다. 일단 첫 곡이자 신곡 ‘You Are My Religion’부터 말이 안 되게 좋았다. 스네어의 작곡 파트너 빌 레버티(기타)의 햇살 같은 리프 멜로디, 화려한 기교보단 우직한 안정성을 택한 마이클 포스터의 정직한 리듬을 뚫고 스네어의 깨끗한 발성이 귀에 꽂힌 그 순간 나는 모든 고민, 분노와 오해, 갈등에서 풀려났다. 그 뒤를 ‘Love Don't Care’, ‘In Your Perfect World’라는 신곡들이 두텁게 채웠고 3집을 남몰래 빛냈던 ‘No One at All’부터 이제 본격적인 어쿠스틱 복각 작업에 들어간다.     



태생이 어쿠스틱인 ‘No One at All’은 원곡과 거의 같게 편곡된 데 비해 템포를 올린 어쿠스틱 및 컨트리 록 버전으로 두 차례 성형을 거친 밴드의 대표곡 ‘Love of a Lifetime’은 어떤 버전에서든 변함없이 반짝거렸다. 헤비한 맛을 제거한 ‘All She Wrote’는 곡이 지닌 이면을 숨기지 않고 들려주었으며, 그건 하드한 느낌을 지우고 맨얼굴로 팬들 앞에 선 ‘Don't Treat Me Bad’도 마찬가지였다. ‘Here for You’의 벅찬 코러스 멜로디, 파이어하우스 발라드의 두 정수 ‘When I Look into Your Eyes’와 ‘I Live My Life for You’, 스티브 영의 원곡 대신 이글스의 아카펠라 버전을 따른 ‘Seven Bridges Road'까지. 파이어하우스 입문자에게도 기존 팬들에게도 그 어쿠스틱 앨범은 똑같이 ‘굿’이었다.     


1991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앨리스 인 체인스와 너바나를 상대해 ‘최우수 하드록/헤비메탈 밴드’ 상을 받았던 순간은 종말의 시작과도 같았다

CJ 스네어      


2020년 9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이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CJ 스네어. 올해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그가 고작 64살에 떠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슬로터와 함께 죽어가던 글램 메탈에 산소 호흡기를 꽂아 넣었던 파이어하우스도 이로써 나에겐 역사 속의 존재가 됐다. 헤비메탈부터 클래식, 뉴에이지, 트랜스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감을 구한 싱어송라이터 CJ 스네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가 없는 파이어하우스를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부디 그곳에 가 ‘O2’에서 함께 한 브루스 웨이벨(베이스)과 진한 회포 푸시길. ‘Good Acoustics’를 다시 들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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