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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27. 2024

거칠고 부드러운 'SMP'의 금자탑


으르렁. 제목부터 남달랐다. 슈퍼카 엔진 굉음이 생각나는 저 비일상적 의성어를 제목으로 쓴 엑소의 알앤비 댄스 팝은 대뜸 이런 노랫말로 훅 들어온다.


"나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 지금 위험해 / 자꾸 나를 자극하지 마 / 나도 날 몰라"


지금 주인공이 경고하는 대상은 너무 완벽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그녀"를 넘보는 "또 다른 늑대들"이다. '으르렁'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조금씩 사나워지는" 남자의 심리를 묘사한 노래로, "곡이 만들어놓은 캐릭터에 몰입해 그 캐릭터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작사를 즐기는 서지음이 노랫말을 썼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철들지 않은 중2"를 통해 아이돌 가사를 써내는 것 같다고 말한 서지음은 기왕에 사나운 분위기를 만든 김에 "그녀를 넘보려면 나를 먼저 넘어보라"는 허세적 라임까지 적소에 심어 이 노래가 가진 질투의 에너지에 기사도의 멋까지 더했다.


작사가를 "멜로디가 하는 이야기를 잡아내는 사람"이라 정의 내리는 서지음은 '으르렁' 외에도 에프엑스의 'Electric Shock’, 레드벨벳의 '7월 7일', 태티서의 'Twinkle', 러블리즈의 '안녕', 효린과 창모의 'Blue Moon',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등 여러 노랫말을 써내며 업계 톱이라 일컫는 김이나에 못지않은 실력을 펼쳐왔다. '으르렁'이라는 제목은 가사를 쓸 때 "사람들 뇌리에 남을 만한 단어를 고르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는 그의 작법 습관이 온전히 반영된 것으로, 이 단어는 심지어 중국어 버전에서도 대체할 말이 없단 이유로 후렴에서 한국어 '으르렁'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작사가로서 사랑 이야기보다 사는 이야기 쓰는 걸 더 즐긴다는 서지음은 2021년 3월 스스로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바이모어(BYMORE)가 편곡해준 싱글 '우주의 온실'을 발매하며 직접 가수로도 데뷔했다.



한국의 음악과 문화를 소개하는 사이트 유나이티드케이팝(unitedkpop.com) 리뷰가 지적했듯 경보음처럼 들리는 '으르렁'의 도입부 신스 루프와 곡 전반을 휘감는 훵키 그루브는 확실히 비욘세의 'Work It Out'을 떠올리게 한다. 크레디트가 밝히고 있듯 '으르렁'의 탄생에는 작곡가 다섯 명이 동원됐고 그중 세 명이 편곡까지 처리했다. 거의가 영어 이름인 작/편곡가 명단은 신혁이라는 유일한 한글 이름이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데, 그는 바로 '줌바스 뮤직'의 대표이자 스스로가 2004년에 가수로 데뷔한 인물이다. 중학생 때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그는 2005년 미국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 맥스 마틴과 퀸시 존스를 흠모하는 신혁은 버클리 재학 시절 작곡가 다섯과 함께 쓴 저스틴 비버의 'One Less Lonely Girl'을 2009년도 빌보드 핫 100 16위에 올려놓으며 히트메이커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런 그가 케이팝과 인연을 맺은 건 틴탑의 2011년 곡 'Supa Love'를 통해서였고 이후 샤이니의 'Dream Girl', 엑소의 '으르렁' 같은 SM엔터테인먼트의 2013년도를 대표하는 히트 싱글들을 내리 써내며 창작자 겸 프로듀서로서 확실한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으르렁' 하면 조수현 감독이 연출한 전대미문의 3분 29초짜리 원테이크 뮤직비디오에 담긴 수은 같은 안무 동선일 것이다. 이 안무를 짠 사람은 자넷 잭슨과 비욘세,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안무가로 유명한 닉 베스. 그는 "소년 같은 엑소 이미지에 강하고 남자다운 모습, 약간의 섹시함과 귀여움 등을 다 넣어보고 싶었다"는 작사가 서지음의 의도를 정확히 동작으로 그려내면서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의 이상적인 교집합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부분 예술은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디테일'을 챙겨야만 완성에 이르는 법이라, '으르렁'에선 이를 위해 두 사람의 역량이 더 필요했다. 바로 SM 전속 '퍼포먼스 디렉터'인 심재원과 황상훈이다.


심재원과 황상훈은 과거 5년간 준비해 '제2의 H.O.T', '제2의 신화'로 불리면서 데뷔(2002년)한 보이밴드 블랙 비트(Black Beat) 출신으로, 팀의 갑작스러운 해체에 따라 이후 레이블 후배들을 돕는 쪽으로 길을 틀었다. 퍼포먼스 디렉터란 쉽게 말해 연출된 영상과 짜인 안무에 이야기(Story)를 더하는 역할로, 두 사람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계기로 이 일을 자신들의 정식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음악에 따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들의 일인데, 가령 엑소 멤버들이 두 패로 나뉘어 한 여자를 위해 배틀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나 뮤직비디오가 시작하며 타오가 카메라에서 모자를 빼앗아오는 퍼포먼스 등이 바로 이들이 '으르렁'의 뮤직비디오에 심은 이야기, 디테일이었던 셈이다. 2010년대를 넘어 한국의 전체 아이돌 음악 역사에서 '으르렁'이 가지는 지분은 결국 심재원, 황상훈이 연출한 이 간발의 긴장감, 거칠면서 부드러운 SMP(SM+Performance)에 빚진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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